최종 업데이트 20.10.13 12:48

[시시비비] 변화된 경제여건에 적응할 때

김경수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지난 주 개최된 한 경제 컨퍼런스에 참석한 토론자는 보다 적극적인 확대 재정정책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느닷없이 정부가 재정준칙을 들고나온 것을 비꼬았다. 정부가 제시한 재정준칙은 정치권·학계·언론계에서 냉소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오랫동안 정부에 몸담았던 한 교수는 너무 늦었다고 개탄했다.
반면 최근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초래한 경제위기 기간동안 급격히 높아진 국가채무를 관리하는 4단계 플랜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제시한 재정준칙을 폄하만 할 수는 없는 대목이다.컨퍼런스에서 '5년 1% 하락의 법칙'이라는 제목의 발표가 눈에 띄었는데, 이는 한국경제가 20세기 말부터 5년마다 1%씩 성장률이 추세적으로 하락한다는 주장이다. 역대정부의 강력한 경기부양책도 이 추세를 막지 못했으며 조만간 0%대에 진입한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발표자는 우리보다 앞선 여러 선진국들의 성장추락 패턴에서 이 법칙을 구했다.
수확체감의 법칙이나 오쿤의 법칙과 같이 '법칙'은 증명할 수는 없으나 경험적으로 인지하는 경제현상이다. 일단 이 법칙이 성립한다고 가정하면 역대 정부는 성장률이 (추세적으로) 하락하는 것을 막기위해 정부지출을 늘렸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실제로 명목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정부지출비중의 5년 이동평균치는 1999년 10.6%에서 2019년 15.8%로 50% 가까이 증가했으며 정부부문의 성장기여도는 0.7%에서 1%로 높아졌다. 성장률은 하락했지만 정부의 성장기여도는 상승했다. 작년 2.0% 경제성장 가운데 정부 몫은 무려 1.6%에 이른다. 같은 기간동안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의 이동평균치는 14.6%에서 36.3%로 증가했다.
통화당국도 부단한 금리인하 압력에 직면했을 것이다. 이는 돈이 실물경제에서 얼마나 활발히 돌았는지를 측정하는 화폐유통속도에서 잘 드러난다. 명목GDP를 광의의 통화지표인 M2로 나눈 값인 화폐유통속도는 크게 하락했는데 그 정도가 미국 등 다른 선진국보다 심하다. 저성장에 대응해 한은은 금리인하를 했으나 정작 풀린 돈은 생산활동을 영위하는 실물부문보다 자산시장 등 금융부문으로 쏠리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됐다.
성장의 장기추세는 수요가 아닌 공급에 의존하는데 생산성이 핵심 결정요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하는 한국경제의 총요소생산성(노동과 자본 등 생산요소가 GDP 생산에 기여하는 핵심 생산성지표)증가율은 2010년대에 들어와 자유낙하하는 모습을 보인다. 생산성 정체는 기업별 산업별 미시자료에 의존한 국내문헌에서도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기업군에서 생산성 정체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보다 앞선 선진국의 경험에 따르면 경제성장과정에서 제조업의 생산비중이 하락하는 시점에 서비스업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는 산업구조전환은 정형화된 패턴으로 나타난다. 이는 경제가 성숙함에 따라 성장동력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경제에 이와 같은 산업구조 전환은 보이지 않는다. 제조업의 생산비중이 정체되고는 있으나 뚜렷이 하락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으며 서비스업도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지 못하고 정체되고 있다.
'5년 1% 하락의 법칙'이 과연 앞으로도 지켜질 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경제가 성숙하면 성장률은 하락하기 마련이다. 경제주체들은 눈높이를 낮추고 변화된 경제여건에 적응해야 한다. 지금은 재정건전성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정부가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고 예산을 집행할 지 그 효율성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김경수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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