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김동표 기자, 황서율 기자] 신발장에 가위를 넣어둔 집주인. 그래야 집이 잘 팔린다는 미신에 기댔다. 수천만 원을 들여 리모델링을 해놓고 새 주인을 기다리는 매도자. 그러나 집 보러 오겠다는 사람이 없다. 일시적 2주택자 A씨, 그는 지난해 10월 동작구 59㎡(24평) 아파트를 중개업소에 내놨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양도소득세 비과세 1년 혜택이 끝나는 오는 4월까지 집을 팔아야만 한다. 다급해진 그는 집값을 1000만원 내리고 중개업소에 250만원의 인센티브를 제시했다.

부동산 시장이 매수자 우위로 전환되면서 현장에선 갖가지 이유로 집을 급매해야 하는 매도자들의 ‘사활을 건 집 팔기’ 풍경이 목격되고 있다. 대다수 매도자·매수자들은 대선 이후를 기다리며 ‘버티기’ 중이지만, 일부 마음 급한 집주인들이 가격을 낮추거나 ‘미끼’를 제시하면서 아파트 시세를 약보합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시장에 매도세가 더 강하다는 건 통계로도 확인된다. 25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번 주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87.3으로 2년7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 수치가 100 미만이면 집을 살 사람보다 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그러나 거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1124건으로 역시 역대 최저치다.
기존 아파트를 팔려고 가위까지 동원했던 B씨는 오는 5월까지 거래를 마쳐야 새로 매수한 집 잔금을 치를 수 있다. 그는 집 보러 오는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데 빵 냄새와 커피 향 만한 게 없다는 부동산 커뮤니티 조언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이 지역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리모델링까지 싹 하고 급매로 내놔도 안 나간다. 보통 급매라면 일주일 내 물건이 소화되지만 현재는 한 달 정도는 잡고 느긋하게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을 가격을 내리는 것이다. 지난해 매매거래 딱 4건이 전부였다는 강남구 대치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직전 거래보다 1억9000만원을 낮춰 내놓은 매물에도 문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고가아파트가 몰려 있는 강남권의 경우 대형 평수보다는 소형 평수 위주로 급매가 나오는 분위기다. 강남구 삼성동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세금 부담 때문에 일찌감치 정리를 한 대형 평수 보유자들과 달리 미리 대비하지 못한 소형 평수 집주인의 매물이 주로 많다"고 전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1월 서울의 아파트 하락 거래 비중은 52.1%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53.0%)보다 비중이 다소 축소됐으나 2개월 연속 하락 거래 비중이 절반을 넘어선 것이다
시장에서는 현재의 매수자 우위시장이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본부장은 "주택시장의 거래절벽 상황은 올해 내내 지속될 것 같다"며 "대출규제도 문제지만 아파트 가격 자체가 너무 높아 실수요자의 접근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시장 상황을 거래절벽으로 규정하는 건 그만큼 하락이냐 상승이냐 하는 ‘추세적 판단’의 근거가 빈약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은 "현재 시장의 상승폭 축소는 통계 표본이 너무 적은 데 따른 일시적 오류일 수 있다"며 "대선과 지방선거가 끝나고 거래량이 회복한 뒤 상황을 재분석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황서율 기자 chest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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