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11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를 하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아시아경제 문채석 기자] 그야말로 '골든 규제 위크'였다. 국회가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과 노조 3법(노동조합법·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을 일사천리로 통과시키면서 기업 현장은 어수선한 분위기다.
여당은 올해 안에 산업재해 사망사고 발생 시 사업주 등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상임위원회에서 통과시킨다는 방침을 밝혔다.
내년엔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법안의 입법도 강행될 예정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보호 무역주의 강화에 따른 교역 불확실성 등 나라 경제에 짙은 먹구름이 끼었는데 돈을 벌어오는 기업의 경영 부담은 커지고 있다.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탄소 순배출 '0')을 실현하기 위해 기후대응기금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휘발유세, 경유세 등 에너지 세제 개편을 통해 재원을 마련할 방침이라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저탄소 사회 전환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된 만큼 재원 마련 체계를 정교하게 가다듬을 때라는 의견도 나온다.
나라 밖에선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통해 무역 주도권 확보에 주력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일 제57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CPTPP 가입을 시사했다.
1부 '규제 3법' 통과

대규모 원금 손실을 낸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관련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가 열린 16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DLF피해자대책위원회 관계자 및 금융정의연대 관계자들이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중징계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정치권은 상법 개정안을 통해 소위 '3%룰' 도입을 관철시켰다. 상장회사가 감사위원 중 최소 1명을 이사와 별도로 뽑도록 하고, 이때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한다. 다만 사외이사인 감사를 선임할 땐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산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3% 의결권을 인정하도록 했다. 걸핏하면 투기세력이 최대주주 및 우호세력을 걸고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지분율 대결)을 벌이는 '주총 대란'이 우려된다. 경영진들은 경영의 핵심인 의결권 방어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대상이 확대된다. 총수일가가 지분 30% 이상인 상장사(비상장사는 20%)는 공정위의 내부거래 규제를 받게 되는데, 앞으로 상장사라도 20% 이상으로 기준이 강화된다. 법안이 시행되는 내년 말부터 삼성생명, 현대글로비스, SK, 한화 등 총 24곳이 내부거래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내부거래 규제를 받는 기업 계열사 중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50%를 넘는 곳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받는다. 지난해 말 지분율을 기준으로 SK머티리얼즈 등 총 381개 기업이 공정래거래위원회 감시 리스트에 추가된다.

폐지하기로 한 공정위의 전속고발 권한은 유지된다. 과정은 나빴고 결과는 논란거리다. '유지→폐지→유지'의 진통을 겪었다. 공정위의 핵심 권한이자 검찰 권한 비대, 집단소송제 및 징벌적 손배제 도입 가능성에 따라 소송 대란이 일어날 가능성 등 논란거리가 많았던 의제인데 정치권이 흥정하듯 유지와 폐지를 일삼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전속고발권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2018년부터 추진됐지만 민주당과 검찰 사이의 갈등으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서 제외됐다. 지철호 전 공정위 부위원장은 "기업에 대한 무분별한 형사고발 증거를 막게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했다.
노동조합의 권한도 확대됐다. 핵심은 해직 노동자를 포함해 '근로자가 아닌 조합원'이 사업장에 출입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생산 주요 시설에서 쟁의행위 금지 조항을 빼서 노조의 행동 반경이 넓어졌다. 단체협약 유효기간은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려 했는데 '최대 3년'이란 단서를 걸어싿.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의 요구를 대폭 반영한 입법이라는 평가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0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 머리를 만지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금융그룹에 대한 감시망은 더욱 촘촘해지고 강해졌다. 특히 위험관리 체계 구축, 건전성 관리 규율 수준이 높아졌다.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라임자산운용과 옵티머스자산운용의 폰지 사기(다단계 사기) 등 '금융 참사'가 벌어진 만큼 소비자 대책 마련에 심혈을 기울인 모습이다.
이로써 금융금융그룹에 속하는 금융사들은 건전한 경영과 위험 관리를 위해 금융그룹 수준의 내부 통제 정책과 위험 관리 정책을 공동으로 만들어야 한다. 또 내부통제와 위험관리를 위한 협의회와 기구를 설치해 운영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금융그룹의 부실화 예방 등을 위해 대표 금융회사에 그룹 차원의 경영개선 계획을 제출할 것을 명령할 수 있다. 현재 법안의 적용을 받는 금융그룹(자산 5조원 이상)은 삼성, 현대차, 한화, 미래에셋, 교보, DB 등 6곳이다.
2부 중대재해법, 3부 집단소송법

정치권의 입법 행위로 단숨에 기업 경영진의 권한은 약해지고 규제당국과 노조의 입김은 유지·강화됐다. 끝이 아니다. 산재 사고 발생 시 사업주 규제 강화, 경영상 논란거리에 대한 집단소송·징벌적 손해배상이 확대될 여지가 남아 있다.
정치권의 메시지는 '제2의 김용균은 안 된다'다. 정부는 지난 8일 구윤철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발전산업 안전강화 방안' 관계 차관회의를 열고 연료·환경 설비 운전분야 노동자를 공공기관이 직접 정규직으로 채용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회의는 지난 10일 고 김용균씨 사망 2주기를 앞두고 진행됐다. 앞서 2018년 12월10일 김씨는 한국서부발전이 운영하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 벨트를 홀로 점검하다가 입사 3개월 만에 사망했다.

24일 서울 영등포구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집중 집회가 열리고 있다. 이날 집회는 서울시의 10인 이상 집회 금지 조치로 9인이 참석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발전 업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금까지 발의된 관련법의 원칙은 '안전관리·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하거나 위험 방지 의무를 위반해 인명사고가 발생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기업 자체에 대한 형사책임을 묻는다'다. 사망 사고가 나면 사업주에게 2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5억원 이상의 벌금을 매긴다.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의 반발이 특히 거세다. 기존 업자들은 사업을 접으려 할 것이고, 신규 업자들의 투자 심리도 크게 나빠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다음은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배제다. 지난 9월 법무부가 두 제도를 담은 법률안 두 개를 입법 예고한 뒤 아직 발의는 하지 않았다. 내년에 법이 통과될 가능성이 정치권에서 제기된다. 이 법과 관련해 가습기살균제 사건 등의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 재발을 막기 위해 도입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권이 기업 경영에 전방위적인 '입법 압박'을 가한 상황인 만큼 재계는 해당 법이 통과되면 기업들이 치명상을 입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반대로 일각에선 공정위 전속고발권은 유지된 만큼 법 취지가 약해지는 것 아니냐고 비판한다.
政, 탄소중립 에너지세 부과…출구전략 제시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57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는 모습.(이미지 출처=연합뉴스)
정부는 7일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기후대응기금을 조성하기로 해 관심이 쏠렸다. 휘발유세, 경유세 등 에너지세제 개편을 통해 재원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했다. 전면적인 조세 저항이 일어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평이다.
그러나 물가와 산업 경쟁력을 염두에 두지 않고 정책의 당위성만을 강조하며 세심하게 체계를 가다듬지 않으면 강력한 조세 저항을 받을 수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후변화 대응, 소득 분배, 물가, 산업 경쟁력 등 미치는 영향이 다각적인 만큼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석탄 화력발전, 내연기관차 등 산업계의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공정한 전환'이라는 새로운 출구전략을 제시했다. 산업 재편으로 실직 우려가 큰 이들 업종 노동자들에 대한 고용 안전망을 펴겠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포스코(POSCO), SK 등 주요 기업들이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RE100(2050년까지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지만, 전통 산업의 붕괴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가 책임지고 '공정한 전환'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배출권 거래 체계 개선, 석탄 총량제 등 여러 규제가 걸린 상황인 만큼 정부가 공정한 전환 정책을 제대로 펼 수 있을지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나라 밖 다자무역 주력…文, 'CPTPP 가입' 시사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8일 바이든 정부 초기부터 다자무역 주도권을 잡고 '통상 중견국'으로서의 존재감을 보이기 위해 "CPTPP 가입을 계속 검토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조 바이든 정부의 재가입 검토,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가입 의지 시사 등에 우리 정부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CPTPP는 일본 주도로 아시아·태평양 11개국이 참여하는 경제 동맹체다. 참여국은 일본, 호주, 뉴질랜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 베트남(이상 7개국은 RCEP에도 가입), 캐나다, 멕시코, 칠레, 페루다. 그간 우리나라는 역내포괄적동반자협정(RCEP) 가입에 집중하면서 CPTPP에 유보적 자세를 취해왔다.
일본과의 수출관세 재조정(한국→일본 0%, 일본→한국 8%를 전면 폐지)으로 우리 자동차 산업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란 우려도 컸지만, 중국이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한 RCEP에 발을 담그면서 미국이 이끄는 CPTPP에도 접근하기엔 외교적 부담이 크기 때문이기도 했다. 일본과의 관계가 아직 풀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 이틀째인 25일 서울 영등포구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 앞에서 '노동개악 저지! 전태일3법 쟁취! 민주노총 총파업 총력투쟁 전국동시다발대회'가 열리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CPTPP는 사실상 100% 수준의 관세 철폐를 지향하는 협의체로, 나라별로 다른 관세 철폐율을 적용하는 RCEP보다 훨씬 개방 수준이 높다. RCEP에선 일본과의 협상에서 자동차와 기계 등 주요 민감 품목을 양허에서 빼거나 장기(10~20년) 관세 철폐 전략을 구사해 위기를 벗어났지만 CPTPP에선 쉽지 않을 수 있다.
이 외에도 CPTPP 가입 시 ▲미국이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수준으로 높은 디지털 협정 내용을 요구할 경우를 미리 대비 ▲중국이 '쌍순환 전략'을 통한 내수시장 활성화 의지를 굽히지 않은 만큼 미·중 갈등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점 ▲올 1~10월 165억6000만달러에 이르는 대일 무역적자 확대 우려 ▲메르코수르, 태평양 동맹 등 완충 협정 없이 CPTPP 체결 시 멕시코 중저가 농축산물 유입 우려 등의 과제를 풀어야 한다.
세종=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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