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제약산업을 움직이는 기업 '머크(Merck & Co./MSD)'의 전설적인 CEO 로이 바젤로스의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메디신, 사이언스 그리고 머크(출판사 바이오스펙테이터)'가 출간됐다. 이 책은 의사이자 생화학자, 그리고 경영자로서 바젤로스가 머크를 세계 최고의 R&D 중심 제약기업으로 이끈 여정을 담고 있다.
머크는 글로벌 제약 산업의 중심축에 있는 기업이다. 1955년 이후 단 한 번도 ‘포춘 500’에서 빠진 적이 없는 49개 기업 중 하나이며, 2023년에는 ‘포브스 글로벌 2000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특히 항암제 ‘키트루다’는 2024년 한 해에만 약 40조 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고, 머크는 같은 해 R&D에 24조 원 이상을 투자하며 ‘신약에 진심인 기업’이라는 명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그 중심에는 로이 바젤로스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의사가 된 후, 미국 NIH(국립보건원)에서 생화학자로 일하며 연구자의 길을 걷다가 머크에 합류했다. 당시 A급 과학자들이 민간 기업으로 이동하는 일이 드물던 시절, 그는 연구소장으로 시작해 1985년 머크의 CEO 자리에 올랐다. 그의 리더십 아래 머크는 스타틴 계열 고지혈증 치료제의 성공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는 신약 개발사로 거듭났고, 연매출은 3배 이상 증가했다.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맥티잔 프로젝트’다. 바젤로스는 아프리카에서 실명을 유발하는 기생충병을 퇴치하기 위해 이버멕틴 기반의 신약 맥티잔을 개발하고, 이를 전 세계 취약국가에 무상 공급하는 결정을 내린다. 이 프로젝트는 1987년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전례 없는 ‘공익 기반 신약 배포’ 사례로 회자된다.
'메디신, 사이언스 그리고 머크'는 단순한 성공 신화가 아니다. 로이 바젤로스가 겪은 과학계와 기업 현장의 치열한 도전, 다양성과 책임을 위한 조직 문화 혁신, 그리고 ‘이윤을 넘어선 가치’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과학에 대한 열정과 공동체를 향한 책임의식이 어떻게 세계적인 기업의 성장을 이끌 수 있었는지, 그의 삶을 통해 생생히 확인할 수 있다.
"왜 미국에서 신약이 나오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은 자본도 시스템도 아닌 ‘사람’이다. 바젤로스는 과학과 인간애, 그리고 경영을 하나로 통합해 보여준 진정한 혁신가였다. 이 책은 그가 걸어온 길을 통해 우리가 잊고 지냈던 진리, ‘아픈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신약 개발의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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