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업데이트 22.05.11 11:29

[시론] 주택시장 설계도


주택시장은 매우 복잡하게 얽혀져 있는 유기체다. 시시각각 변한다. 그래서 두더지 잡기식 정책으로는 제대로 관리할 수 없다. 정확한 문제진단과 적절한 처방이 필요하다. 무엇이 문제인가. 높은 집값만 문제가 아니다. 집값의 오르고 내림에 집중하고 있지만, 한켠에서는 몇 십만원짜리 월세 마련이 어려워 전전긍긍하고 있다. 당장 장마철에 비새는 것을 걱정한다. 비좁고 어두운 골목길에 자녀의 출퇴근을 걱정하는 부모도 있다. 오래되고 낡은 집은 노인들이 생활하기에 버겁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주택문제이고 사회문제이며, 함께 해결해 나아가야 하는 지점이다.
그런데 지금 주택정책에는 집값만 보인다. 그러다 보니 투기꾼을 잡아야 하고, 어제의 집값과 오늘의 집값 차이에 일희일비한다. 어두운 뒷켠에 낡아서 허물어져가는 집은 보이지 않고, 큰 대로변에 번쩍번쩍한 마천루의 그럴싸한 아파트만 보인다. 지방의 농어촌주택은 없고, 한강 조망권을 갖는 서울의 아파트만 있다. 새 정부 부동산정책팀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 대상이다. 규제이야기만 한가득이다. 지난 5년 동안 얼키고 설킨 규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규제완화가 주택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또 집값 이야기다.
집값을 넘어서 보자.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각자에게 맞는 적당한 주택이다. 적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적당한 집을 적당한 시기에 국민들이 가질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고급진 정책을 고민해보면 어떨까. 저소득층은 저소득층에 맞는, 중산층은 중산층에 맞는 집에서 살 수 있도록 해주고, 열심히 노력해서 좀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할 수 있는 주거상향의 기회를 아낌없이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촘촘히 설계해 나가면 어떨까. 그러기 위해선 반값 아파트의 환상을 던져버려야 한다. 주택도 재화다. 들어가는 비용을 무시하고 무조건 반값에 판매하는 것은 지속할 수 없다. 누군가의 이익은 누군가의 손해다. 누군가의 손해를 담보로 한 정책은 오래갈 수 없다.
유엔해비타트(UN-HABITAT)는 집은 안전하고(safe), 안심할 수 있고(secure), 시설적으로 살만해야 하며(habitable), 부담가능해야(affordable)한다고 강조한다. 250만호 숫자로 해결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특히 미래주택은 가격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안전, 안심, 성능, 품질 등 다양한 가치를 종합적으로 담아 기후변화에도 대응해야 한다. 그렇기에 주택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진단, 그리고 올바른 처방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주택시장 설계도’를 만들어보자.
우리는 건물에 문제가 생기면 설계도면을 본다. 설계도를 보면서 어디에서 어떤 문제가 생겼을지 생각해 보고, 그에 맞는 진단을 내리면서 적절한 처방을 구상한다. 그런데 주택시장은 설계도가 없다보니 그때마다 국지적인 문제에 대응하기 급급하다. 국지적인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다른 곳에서 뜻밖의 문제가 터진다.
1년 만에 폐지된 재건축 조합원 실거주 2년 의무화는 잘못된 시장진단과 처방의 피해가 고스란히 세입자에게 전가된 대표적 사례다. 사전에 재건축 세입자와 집주인, 임차시장의 연결 구조에 맞는 처방을 했더라면 막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새 정부에 제안한다. 속도조절을 하면서 주택시장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는 촘촘한 주택시장 설계도를 먼저 만들고, 그 기반에서 주택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찾아보면 어떨까.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정책연구실장




류태민 기자 righ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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