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아림이 75번째 US여자오픈 최종일 18번홀에서 버디를 낚은 뒤 환호하고 있다. 휴스턴(美 텍사스주)=Getty images/멀티비츠
[아시아경제 노우래 기자] 한국 여자골프가 또 한 번의 감동을 선사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라는 '국난(國難)' 속에서 전한 승전보다. 장타자 김아림(25ㆍSBI저축은행)이 그 주인공이다. 15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챔피언스골프장 사이프러스크리크코스(파71ㆍ6731야드)에서 막을 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2020시즌 마지막 메이저 75번째 US여자오픈(총상금 550만 달러)에서 짜릿한 역전우승(3언더파 281타)을 완성했다.
5타 차 공동 10위에서 출발해 버디 6개(보기 2개)를 쓸어 담았다. 특히 16~18번홀 3연속버디를 잡아내는 무서운 뒷심을 자랑했다. 2011년 유소연(30ㆍ메디힐)과 2015년 전인지(26ㆍKB금융그룹) 이후 한국 선수 3번째 비회원 신분 우승이자 통산 11승째의 기쁨을 맛봤다. 패티 버그(1946년), 캐시 코닐리어스(1956년), 김주연(39ㆍ2005년), 전인지(2015년)에 이어 역대 5번째 첫 출전 우승이다.
김아림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2승, 세계랭킹은 94위에 불과한 선수였다. 그 누구도 우승후보로 꼽지 않았다. 그러나 첫날 3언더파를 작성해 이변을 예고했고, 마지막날 4언더파를 몰아치며 '메이저퀸'에 등극했다. "아직은 얼떨떨하다"며 "오늘 제 플레이가 어쩌면 누군가에게 정말 희망이 되고 좋은 에너지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박세리가 1998년 US여자오픈 연장전 당시 18번홀에서 연못에 들어가 트러블 샷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22년 전인 1998년에도 골프는 드라마를 만들었다. 당시는 국가 부도 위기였다. 1997년 11월 국제통화기금(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을 정도로 한국 경제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국민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진 시점에서 '영웅'이 등장했다. 바로 박세리(43ㆍ은퇴)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메이저 5승을 포함해 한국 선수 최다승인 통산 25승을 수확한 '살아있는 전설'이다.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맨발의 투혼'을 보여줬다. 제니 추아시리폰(태국)과 5일간 92개 홀 '마라톤 승부'를 펼친 끝에 정상에 올랐다. 연장전이 백미였다. 18번홀(파4)에서 티 샷이 감기면서 페어웨이 왼쪽 연못으로 날아갔다. 박세리는 그러자 연못 턱에 걸려 있는 공을 치기 위해 양말을 벗고 물속에 들어가 트러블 샷을 구사했고, 기어코 보기로 틀어막았다. 연장 두번째 홀에서 '우승 버디'를 낚았다.
검게 탄 얼굴과 종아리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하얀 발이 전 세계 골프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IMF 경제위기 속에서 시름하던 대한민국의 희망이 됐던 이유다. '맨발 샷' 이후 실제 국내에서는 골프열풍이 불었고, 박인비(32ㆍKB금융그룹)와 신지애(32) 등 '세리 키즈'가 등장했다. 박세리는 "US여자오픈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연못 샷은 내 인생 최고의 샷"이라고 설명했다.
노우래 기자 golfm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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