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9.07.02 06:09최종 업데이트 19.07.02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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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보장성 높이려면 공급자의 경제적 유인 고려하고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해야"

권순만 교수, "재난적 의료비와 의료비용으로 인한 빈곤화 수치로 체감도 높여야"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정다연 기자]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저렴한 의료비, 전국민 의료보험 가입 등은 흔히 우리나라 건강보험만의 장점으로 꼽힌다. OECD 국가 간 지표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대한 국민들의 체감도를 높이려면, 국민 전체의 본인부담률 평균이 아니라 재난적 의료비와 의료비용으로 인한 빈곤화 등 수치를 기준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권순만 교수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6월 발간한 '보건복지포럼'에서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성의 현실을 짚고 향후 보장성 강화를 위한 접근법과 주요 정책 과제를 제시했다. 권 교수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보장 영역 확대, 상병수당 등 도입, 절차와 정책 과정에서 국민의 참여도 향상, 공급자에 대한 지불제도 개편, 정책 목표로서 보장성 지표의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봤다. 

국민 평균 본인부담률은 낮지만 재난적 의료비·의료비 빈곤화 심각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평균 본인부담률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국민 전체의 평균 본인부담률의 높고 낮음이 재난적 의료비 및 의료비로 인한 빈곤과는 크게 연관이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권 교수는 건강보험 보장성의 수준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가구소득 중 일정 수준 이상을 의료비로 지출하는 '재난적 의료비의 발생(catastophic payment)' 또는 의료비 지출로 인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빈곤화(improverishment)'를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대한 지표로는 전체 국민의 평균적인 본인부담률이 사용됐다. 권 교수는 본인부담금 수준 자체는 정책적 의미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OECD 국가 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말레이시아, 라트비아, 멕시코 등 국가는 한국보다 평균 본인부담률은 높지만 재난적 의료비 발생률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복지포럼' 제공.

권 교수는 말레이시아의 국민 의료비에서 차지하는 환자 본인부담률의 평균이 50%에 이르지만 재난적 의료비나 빈곤화 문제는 심각하지 않다고 짚었다. 그 이유로 말레이시아는 공공의료체계가 비교적 잘 갖춰져 있어 국민 대부분이 필수의료에 대한 접근성이 매우 높은 환경이 꼽혔다. 

권 교수는 소득이 높은 계층이 병원의 긴 대기 시간을 피하려고 본인부담으로 민간의료체계를 이용하는 경향이 말레이시아의 평균 본인부담률의 평균을 끌어올린 것이라고 밝혔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다양한 접근법은

현재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해 사용되는 접근 방식으로는 서비스 항목별 접근, 질환별 접근, 비용 접근, 사회계층별 접근, 현금급여 접근 등이 있다. 권 교수는 각 접근 방식에 대해 소개하고 장점과 단점을 설명했다.

서비스 항목별 접근법은 현재의 법정 비급여 항목에 우선순위를 정해 급여에 포함하는 방법으로서 행위별 수가제에 기반을 둔 우리나라의 보험 급여 체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접근법이다. 

권 교수는 그동안 정부가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지속적으로 확대했는데도 불구하고 보장성 수준이 크게 향상되지 못한 이유로 새로운 의료서비스와 기술이 시장에 진입해 비보장 항목이 빠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는 항목별로 보장 범위를 늘려도 총 의료비용이 빠르게 증가하면 보장성이 정체하거나 후퇴할 수 있다고 봤다. 항목별 급여 확대는 서비스 제공의 분절화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항목별 접근의 성과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질환별 접근법은 질병 부담을 기반으로 사회에서 부담이 큰 질환에 대해 우선으로 급여를 확대하는 접근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 시행된 질환별 접근법의 예는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정책이다. 

권 교수는 이러한 접근법은 특정 질환 환자들을 빠르게 정책 옹호자로 만들고 현실적으로 비용 부담이 매우 큰 질병에 대해 보장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상 질환에 포함되지 않으면 혜택을 받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비용 접근법은 상병의 종류나 의료 항목과 관계 없이 과도한 의료비 지출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재난적 의료비 발생을 막는 접근 방식으로 본인부담상환제 등이 그 예다.

권 교수는 사후적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총누적 의료비용을 상환해 주는 것이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측면에서 이론적 타당성이 높고 환자의 실질적인 의료비 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의료 제공 및 이용 행태에 대한 정책적 개입을 하는 결정 과정이 복잡하고 한계가 있다고 봤다.

사회계층별 접근법은 의료비 부담 능력이 약하거나 의료비 투자의 기대 효율이 높은 집단 및 계층에 대해 우선적으로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노인, 저소득층, 장애인, 임산부, 아동 등에 대한 급여의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다. 

권 교수는 이 방식의 한계로 경제적 취약계층이 아닌 경우에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현금급여 접근법은 보장성 강화 정책이 확대되기까지 기간 동안 과중한 의료비 지출을 경험하는 경제적 취약계층에 현급급여나 상병수당을 제공해 비급여에 해당하는 부분까지 의료비 부담을 경감시키는 방식이다.

권 교수는 이 방식은 취약계층이 근로 능력을 상실하고 의료비 부담으로 인해 더욱 빈곤화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쓰일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상병수당 등 현금급여 접근법이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계를 짚었다.

국민 체감 높이는 보장성 강화 위한 정책 과제는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는 정책 과제로는 비급여 관리 및 보장영역 확대, 국민 참여 확대 및 거버넌스 구축한 정책 결정 과정 제도화, 진료비 지불제도 개선을 통한 보장성 강화와 의료 공급체계 변화, 보장성 지표 개편 등이 꼽혔다. 

권 교수는 비급여 관리 및 보장영역을 확대하는 부분에서 혼합진료에 관한 기준을 마련하고 현금급여 접근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권 교수는 정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예비급여 등을 통해 비급여서비스를 급여화하고 예비급여와 비급여의 지속적인 관리와 평가, 비급여 이용시 환자의 선택권 강화 등 급여와 비급여를 동시에 제공하는 혼합진료에 관한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사후적인 본인부담상한제가 있지만 법정본인부담금 수준이 상당히 높아 취약계층의 경우 의료이용 시점에서 의료접근성이 저해될 수 있다면서 현재의 법정본인부담률이 적정한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료비로 인한 빈곤화를 예방하기 위해 유급 병가, 생활비 지원, 상병수당 등을 도입하는 것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치료 중심의 급여 구조가 예방, 건강 증진, 재활, 호스피스·완화의료 등까지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 보다 많은 국민들이 참여하는 시민 참여 모델로서 시민위원회 등을 만들어 투명한 의사결정 구조를 제도화 해야 한다고 밝혔다.

권 교수는 경제학적 접근은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만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관점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또 보건의료 영역에서 강력한 의료전문부의로 인해 시민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는 비민주적인 측면이 있었다고 봤다.

그는 건강보험의 급여를 확대해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은 제한된 보건의료 자원 사용에서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며 사회적 차원의 가치판단과 우선순위 결정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어 급여 확대와 우선순위 선정에 관한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높이는 절차 수립의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건강보험 보장성은 실제 의료의 제공과 이용의 효율성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고 봤다. 불필요하게 과다한 수준의 의료 제공 혹은 비용효과적이지 않은 서비스 제공이 소비자의 재정적 부담 증가와 보장성 약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의료공급자에 대한 경제적 유인을 고려하지 않으면 보장성은 높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진료비 지불제도를 개편하는 정책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권 교수는 보장성 강화의 판단 지표를 국가의 평균적인 본인부담률로 삼기보다 국민이 체감하는 보장성이 높아질 수 있도록 재난적 의료비, 빈곤화, 미충족 의료 욕구 등의 지표를 사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다연 기자 (dyjeong@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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