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6.12.22 07:16최종 업데이트 16.12.22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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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평의학'에 두손 든 전문의들

결핵약 사전심사위원들 줄사표 낸 이유

질본 "내년 초 급여기준 마련하겠다"

사진: 픽사베이

 
[초점] 결핵 사전심사제
 
신약에 대한 무분별한 삭감 부담에서 벗어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다제내성 결핵 신약 사전심사제도(이하 사전심사제)'가 미궁에 빠졌다.
 
21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최근 한 국립결핵병원에서 약물 사용 승인이 날 때까지 기다리던 결핵 환자가 사망하는가 하면, 결핵 및 호흡기 전문의로 구성된 사전심사위원들이 줄사퇴 의사를 밝히는 등 제도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난 9월 1일 시행된 사전심사제는 다제내성 결핵 환자를 진료한 주치의가 신약(제품명 서튜러, 델티바) 처방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더라도 약을 바로 처방하지 않고,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와 심평원의 사전심사를 받도록 한 제도다.
 
질본 산하 사전심의위원회(대학병원‧국립결핵병원 전문의 5인 구성)의 1차 심사와 심평원의 2차 심사에서 승인 결정이 나야만 신약 처방이 가능하다.
 
이는 그동안 고가 다제내성 신약(6개월 3천만원)의 삭감이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삭감을 두려워한 의사들이 처방을 기피하자, 이를 개선하기 위한 차원에서 도입한 제도다. 
 
또 약값 삭감으로 인해 환자가 약 복용을 중단하면 또 다른 내성이 발생하므로, 보험급여 기준을 만들 때까지 질본이 심평원과 사전심사위원회 중간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막상 시행해보니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일단 최종 승인을 받는 데까지 너무 긴 시간이 걸린다. 도입 당시 질본은 사전심사 요청일로부터 최종 승인 통보까지 일주일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짧으면 2주, 길면 한 달 이상 지체되는 일이 빈번했다.
 
복잡한 서류 제출 요구를 맞추지 못한 의사가 두 번 세 번 제출한다거나, 질본의 사전심사위와 심평원의 결정이 불일치해 의견이 왔다 갔다 하는 간극이 생긴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 국립결핵병원에서 약을 기다리던 환자가 사망하는 일도 발생했다.
 
사전심사위의 의학적 판단을 심평원이 따라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심사위가 급여를 결정했음에도 심평원이 최종 불승인하는 일도 잦았다.
 
실제로 9월 시행 후 현재까지 신청된 60건 중 심평원의 최종 사용 승인을 받은 건 절반(32건)에 불과하다.
 
최근 결핵 전문가인 사전심사위원들이 줄사퇴 의사를 밝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질본은 심사위원들이 사퇴를 철회한 후 이전처럼 심사하고 있고, 시간 지체 문제도 보완해 일주일 안에 통보하고 있다고 해명하지만 부정적인 인식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결핵전문 서울서북병원 서해숙 박사는 "사전심사제는 악법"이라며 "승인 결정이 너무 지체되면서 당장 약을 써야 하는 환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요구하는 서류도 까다로워 신약을 쓰고 싶지 않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내년 초 사전심사제 종료… 급여기준 마련
 
당초 정부는 사전심사제를 올해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고, 심사 자료를 바탕으로 보험급여 기준을 만들어 내년 1월 1일부터 급여기준대로 심사하겠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급여기준에 대한 합의 및 고시 개정 소요 시간을 고려할 때 빨라야 1월 중순 급여기준이 나올 전망이다.
 
질본 에이즈결핵관리과 관계자는 "올해 안에 급여기준 초안을 만들어 심평원에 제출할 예정"이라며 "심평원이 최종 승인해야 하므로 사전심사제 종료의 키는 심평원에 있다. 최대한 서둘러 내년 초 급여기준을 고시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급여기준이 답일까?
 
급여기준이 나와도 삭감 부담을 덜 수 있을지 미지수다.
 
다제내성결핵의 치료과정이 워낙 복잡하고 신약의 허가사항도 애매한 부분이 많아 임상 현장과 심사기관 간 판단이 엇갈릴 가능성이 큰 것이다.
 
사전심사위원회 위원인 심태선 교수(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는 "급여기준이 만들어져도 삭감 논란을 해소하기는 어렵다"면서 "사전에 급여 적용 여부를 가이드할 수 있는 안내 창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심 교수는 "보험 결정권자인 심평원이 안내 창구를 마련하든, 아니면 전문가에게 책임과 권한을 위임해 외부에 마련하든, 삭감 부담 때문에 약을 써야 하는 환자에게 못 쓰는 일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급여 여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스코어링(scoring) 시스템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결핵전문 국립마산병원 김대연 원장은 "약제 내성이 몇 개면 몇 점, 이런 식으로 세부항목의 점수를 매기는 도구가 있다면 삭감의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이라며 "급여 여부를 판단할 객관적인 지표가 필요하다. 정량화하지 않으면 판단하는 사람의 방향성에 좌우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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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연주 기자 (yjsong@medigatenews.com)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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