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한국이 주요 5개국(G5)에 비해 고령화 속도는 빠르고 노인빈곤 문제가 심화하고 있지만 노후소득을 보장하는 연금 제도가 미흡해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속적으로 재정안정성 문제가 제기돼 온 국민연금이 현 체제로 운영되면 1990년대생이 30여년 뒤에 연금을 한푼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13일 한국과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등 G5의 고령화 실태와 연금제도를 비교하고 "연금개혁이 당장 이뤄지지 않는다면 미래 세대에 막대한 세금부담이 전가될 것"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와 통계청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2020년 40.4%로, 조사대상 OECD 37개국 중 1위였고 G5 평균(14.4%)의 약 3배에 달했다. 한국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은 2022년 기준 17.3%로 G5보다 낮은 수준이지만 2025년에는 20.3%로 미국(18.9%)을 제치고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며 2045년에는 37.0%로 세계 1위인 일본(36.8%)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빠르지만 노후소득을 보장하는 공·사적연금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경연은 지적한다. 노후생활 주요 소득원을 비교한 결과 한국은 국민연금, 기초연금 등 공적이전소득 비중은 25.9%로, G5 평균(56.1%)에 비해 낮다. 또 사적연금이나 자본소득과 같은 사적이전소득(22.1%)의 공적연금 보완 기능도 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로 인해 한국은 노후소득의 절반 이상(52.0%)을 근로소득에 의지하고 있었다.
은퇴 전 평균소득 대비 연금지급액 수준을 의미하는 공·사적연금 소득대체율도 한국은 2020년 기준 35.4%로, G5 평균(54.9%)보다 20%포인트 가까이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한경연은 한국의 공적연금 제도가 G5에 비해 덜 내고 더 빨리 받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한국의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현행 62세에서 2033년 65세로 상향 조정할 예정이나 현행 65~67세에서 67~75세로 상향하려는 G5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이다. 또 한국의 보험료율은 9.0%로 G5국가 평균(20.2%)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고 최대로 받을 수 있는 기본연금액(완전연금)에 필요한 가입기간도 20년으로 G5 평균(31.6년)보다 10년 이상 적었다.
한경연은 국회예산정책처를 인용해 국민연금 재정수지가 2039년 적자로 전환되고 적립금은 2055년 소진될 전망이라면서 "현재의 국민연금 체계를 유지할 경우 2055년에 국민연금 수령자격이 생기는 1990년생부터 국민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국민연금 가입자 100명당 부양해야 할 수급자 수는 2020년 19.4명에서 2050년 93.1명으로 약 5배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한경연은 "만일 국민연금을 계속 지급하려면 보험료율 급등으로 미래 세대가 과도한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고 우려했다.

사적연금 제도를 살펴봐도 15~64세 인구 중 사적연금 가입자의 비율은 한국이 17.0%로, G5 평균 55.4%를 하회했다. 한경연은 "한국의 사적연금 세제지원율은 19.7%로, G5 평균 29.0%보다 낮다"면서 "사적연금에 대한 유인이 부족해 가입률이 낮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국민연금 제도부양비 급증, 기금 고갈 전망으로 미래 세대의 노인부양 부담이 막대할 것으로 우려되는 가운데 연금개혁 논의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초고령사회에서 노후소득기반 확보를 위해서는 국민연금 개혁과 세제지원 확대 등 사적연금 활성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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