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아시아경제 문채석 기자] 노사정 대타협 기구인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연구회에서 정년 연장이 반드시 고령화 사회의 '만병통치약'은 아니기 때문에 한계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30일 경사노위가 발간한 '사회적 대화 브리프 7호'에서 구미현 전문위원은 "정년연장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현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한계와 문제점을 면밀히 검토하는 작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에서 논의가 시작된 것은 2019년 6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 공중파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베이비부머 세대의 노후대책이 미흡해 큰 사회적 부담이 될 수 있는 상황인 만큼 정년연장에 대한 폭넓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발언하면서다. 당시 홍 부총리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매년 80만 명가량 노동시장에서 이탈하고 있고, 진입하는 사람은 40만 명임을 고려하면 그(청년 일자리 감소) 같은 효과는 완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 전문위원은 연공서열적 임금체계 등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선제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청년 일자리 감소 등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고 알렸다. 특히 기업 비용 부담 증가, 청년 고용과의 대체성 등 두 가지 주제의 이견은 반드시 사회적 대화를 통해 좁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속연수에 비례해 임금이 높아지는 연공서열식 임금 체계 문제를 개선하지 않은 채 고용이 연장되면 기업 비용부담이 신규 채용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지난 9월27일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대·중소기업 300개사를 조사한 결과 정년 60세 의무화 때문에 중장년 인력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응답이 89.3%였다. 이유로 '높은 인건비'를 든 기업이 47.8%로 가장 많았다. '정년 65세 연장'에 대해선 71.7%가 '부정적'이라고 응답했다.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정년연장 시기상조'(40.7%), 고용연장 하더라도 정년연장 방식은 안 된다'(23.7%), '대기업, 공공기관 등 좋은 일자리에서만 혜택받는 제도로 반대한다'(7.3%) 등 이유 때문이었다.
구 전문위원은 "연공서열식 임금체계와 승진·승급체계개편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가 필요한 때"라며 "고령자 고용연장 논의는 임금체계의 개편 논의, 다양한 고용연장 방안과 근로시간 조정 등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어떤 방식이든 기업의 임금과 승진·승급 플랜이 장기근속의 인센티브는 갖되 실제 생산성과 거의 유사하도록 조정돼야 중고령 근로자의 실질적인 고용안정을 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년연장이 청년 고용 기회를 앗아가는 결과로 돌아와 자칫 '세대 갈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봤다. 구 전문위원은 "특히 공무원, 교사, 공기업, 대기업 같은 소위 '양질의 일자리'는 대부분 고용연장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므로 일자리를 둘러싼 소위 세대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연령이나 근속이 아닌 직무와 능력 중심으로 인사관리시스템을 개편해야 고용연장 후 고령자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임금의 유연성을 높여 법적 정년연령과 실제 주된 일자리의 퇴직연령 간의 차이를 좁힐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사회적 대타협 과정에서 임금체계 개편을 먼저 지원한 뒤 고령자 정년연장을 법제화한 일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는 "일본은 고령화 대응 정책 속도가 빨라지더라도 기본적으로 (임금 체계 개편 등) 지원 조치를 통해 고용연장을 유도한 뒤 마지막으로 법적 의무화하는 방식으로 제도화를 추진했다"며 "노사 및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듣고 고용연장의 다양한 방안을 구체적으로 설계한 뒤 충분한 기간을 둬 기업과 근로자가 관련 제도 및 정책 변화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세종=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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