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송승섭 기자]소상공인들이 금융사나 정부가 아닌 가족과 친지를 통해 돈을 빌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영세한 업체가 많고, 정부와 금융당국이 쏟아낸 지원책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러한 현상은 규모가 작은 소상공인일수록 뚜렷해졌다. 대다수 소상공인들이 추가 대출을 희망할 정도로 자금사정이 넉넉하지 못한 만큼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2일 KB금융경영연구소가 발간한 ‘2021년 KB 자영업 보고서-수도권 소상공인의 코로나19 영향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소상공인이 보유한 대출규모는 평균 1억2855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들 중 이미 대출을 보유한 자는 전체 82%였다.
자금융통은 가족과 지인에 의존했다. 가족과 지인에게 차입한 소상공인이 34%에 달했다. 사업자로서 금융기관에 찾아가 전용대출을 받은 소상공인(31%)보다 많았다. 정부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내놓은 정책자금 대출 이용자도 37%에 불과했다. 가장 많은 유형은 사업자가 아닌 개인으로 신용·담보대출을 받는 경우(50%)였다.
금액으로 보면 가족과 지인에 의지하는 성향이 더 두드러졌다. 개인 신용·담보대출 규모는 평균 9800만원으로 가장 컸다. 가족과 지인에게 빌린 돈은 평균 7100만원으로 두 번째였다. 사업자전용대출은 5534만원이었고 소상공인정책자금 대출은 3380만원에 그쳤다.
자금 사정이나 금융 관련 문제를 ‘주로 가족·친지와 상의한다’는 소상공인이 51%로 절반 이상이었다. 특히 매출규모가 작을수록 가족·친지와 상의하는 비율이 높았다. 매출이 3억원 이상일 경우 해당 비중은 44% 정도였지만, 6000만원 미만이면 55%였다. 전문성을 띈 은행 등 금융기관과 상담한다는 소상공인은 17%뿐이었다. ‘상의할 대상이 없다’(16%)는 응답도 상당수였다.
빚에 허덕이고 있지만 돈을 더 빌리겠다는 수요도 높았다. 10명 중 8명이 대출을 보유한 상황이지만 전체 72%가 향후 추가대출 의향이 있었다. 대출이 없는 소상공인(18%) 역시 38%는 신규대출을 희망하는 상태였다. 유형별로는 금리가 비교적 저렴한 소상공인정책자금 대출이 55%로 가장 많았고, 사업자 전용 대출(34%)가 뒤를 이었다. 개인 신용·담보대출과 가족·지인 차입은 각각 20%, 10%를 기록했다.
필요한 자금규모는 5000만원에서 1억원을 희망하는 소상공인은 30%였다. 3000만~5000만원가량 빌리고 싶어하는 소상공인도 24%로 나타났다. 추가로 받은 대출은 재료 구매비나 인건비 등 사업운영자금 마련(69%)에 쓰겠다고 했다. 생활비 목적은 47%로 권리금, 보증금, 인테리어비용(25%)보다 많았다. 당장 먹고 쓸 돈도 없어 추가로 빚을 내겠다는 소상공인이 절반 가까이나 되는 셈이다.
이자 빨리 갚고 싶은데…"전폭적인 금융지원책 나와야"

그럼에도 대출이자를 비용으로 인식하고 가급적 빨리 상환하려는 경향성이 두드려졌다. 자금수요가 절실한 상황에서 금리까지 가파르게 오른 결과다. 소상공인의 65%는 여유자금이 생길 때마다 대출을 상환하는 게 낫다고 인식했다. 사업확장을 위해 확보하는 편이 바람직하다(35%)고 본 소상공인의 2배였다.
현금의 경우 가급적 보유를 희망하는 소상공인이 65%였다. 보험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충분히 가입하는 게 낫다’가 60%였고, ‘연금보다 다양한 방식을 투자하는 게 낫다’는 소상공인은 52%였다.
소상공인들이 요구불 계좌에 보유한 돈은 평균 100만원~500만원 미만인 경우가 32%로 가장 많았다. 이후 500만~1000만원(24%), 1000만~1억(22%), 100만원 미만(19%), 1억원 이상(3%) 순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사가 ‘취약한 소상공인’과 ‘부실한 금융지원’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수천만원이 필요한 소상공인들은 제도권 금융기관을 이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용도가 악화된 상황에서 이들을 포용해야 할 정부와 금융당국의 지원정책이 부족했다는 취지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코로나19로 타격받은 소상공인이 사업자로서 금융기관의 돈을 빌리기 어려워지자 지인에게 손을 벌렸다"며 "정부와 금융당국에서 한정된 금액을 내 건 이상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이어 "소상공인을 살리려면 모든 사람에게 수십만원씩 뿌리는 지원책이 아니라 어렵고 손 벌릴 곳 없는 이들에게 전폭적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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