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와 청와대가 22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주장에 대한 ‘불가’ 방침을 명확히 했다. 최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한시 완화 법안 마련에 돌입한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0일 긴급 당정회의에서 보유세 동결 방안 마련을 주문한 것에 대해 정부 측 의사를 명확히 밝힌 것이다. 다만 정부 임기 말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당과 정·청 간의 갈등이 잇따르면서 가뜩이나 위축된 주택거래 시장이 얼어붙으며 시장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政도 靑도 "계획 없다"…다주택자 양도세 완화 선긋기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주장에 정부가 연이틀 철벽을 치고 나섰다. 부동산 정책을 놓고 당·정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양상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사안은 시장안정·정책일관·형평문제 등을 감안해 세제변경 계획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전날 김부겸 국무총리가 한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정부 정책에 신뢰가 떨어져서 정부로서 동의하기 어렵다"고 공개 발언한 데 이어 정부의 반대 입장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 역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유예 방안에 대해 "지금으로서는 선택하기 어렵다"며 반대 입장을 거듭 밝혔다. 이 실장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는 그대로 가야 한다는 입장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며 "지금으로서는 선택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다만 1주택자들의 종합부동산세·재산세 등 보유세 부담 완화에 대해서는 "1주택 보유 서민·중산층의 세부담을 일정 부분 완화해주는 보완책을 검토해오고 있다"며 수용 방침을 기정사실화했다. 하지만 홍 부총리가 1주택자 중에서도 ‘서민·중산층’으로 그 대상을 좁힌 만큼, 같은 1주택자라 하더라도 사실상 강남 3구를 비롯한 초고가 주택 등은 보유세 완화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특정 가액기준에 따라 ‘갈라치기’가 된다는 점에서 후폭풍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부동산 정책 놓고 충돌하는 신·구권력 = 부동산 세금 정책을 놓고 당과 정·청간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정부를 압박하는 발언을 계속 내놓고 있다. 송 당 대표는 이날 라디오에 출연해 "(지난 4·7재보선 직후 논의된) 종부세나 양도세 대상 완화에 대해 상당수 의원들과 청와대가 ‘정책 일관성’의 논리로 반대했는데, 집값을 이렇게 올려놓고 장부상 현금소득에 과세한다는 것은 징벌적 의미가 있다"면서 "조정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현실화되지 않는 집값 상승에 대하 과세나 은퇴후 퇴직자의 경우 과세이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청와대는 당·청간 갈등으로 비쳐지는 모습을 경계하며 관점의 차이 정도로 의미를 제한하는 모습이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 후보가 현 정부에서 어렵다면 다음 정부에서 하면 된다고 밝혔고, 송 대표는 부동산 세제를 논의하는 워킹그룹을 만들어보겠다고 해 이 문제는 그렇게 조율이 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주택자 매물 회수" 시장 혼란 가중 =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당·청 갈등은 시장의 혼란만 키우는 모습이다. 심지어 시장에서는 집주인들이 세금 부담 때문에 팔려고 내놨던 매물을 다시 회수하는 움직임마저 나타나고 있다. 서울 방배동 A공인중개사사무소(공인) 대표는 "자금 사정 문제로 아파트 하나를 팔려고 내놨던 다주택자로부터 잠시 보류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라며 "매도, 매수 문의가 모두 끊겼다"고 말했다.
이달 들어 서울 아파트 매매 시장은 거래 절벽 상태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집값 고점 인식, 대출 규제와 금리 인상, 대선 변수 등으로 거래량이 눈에 띄게 급감한 가운데 최근 당정이 양도세 중과 완화 여부를 놓고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거래 시장이 더욱 냉각되는 분위기다.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이날 기준 11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잠정치)은 1295건으로 10월(2313건)의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거래절벽 상황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가뜩이나 대출 규제와 금리 인상 등으로 매수세가 위축된 상황에서 대선을 앞두고 정권 교체 등 변수가 있는 만큼 시장 참여자들의 관망세가 더 짙어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현재 당정 갈등이 다주택자에 ‘버티면 된다’는 신호를 주고 있고 한시적 유예가 끝나면 매물 잠김으로 오히려 집값이 올라가는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