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연료비 급등 여파로 한국전력이 발전사에서 구매하는 전기 비용이 7년 4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오는 20일 결정되는 내년 1분기 전기요금이 또 다시 동결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142조원 빚더미에 신음하는 한전의 부담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 4조원 가량 예상되는 한전 적자가 내년에 확대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연료비 급등에 구매비 치솟아=17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한전이 발전사 등으로부터 전기를 사오는 가격(SMP)은 지난해 11월 1kWh당 49.8원에서 올해 12월1일 기준 148.67원으로 치솟았다. 불과 1년여만에 3배로 뛰었는데 2014년 7월18일(148.85원) 이후 7년 4개월만에 최고치다.
이는 원유, LNG 등 연료비가 급등한 탓이다. 한국과 일본이 도입하는 LNG 시세(JKM) 가격은 저점을 찍었던 지난해 4월 100만BTU당 2.13달러에서 올해 10월 35.07달러로 16배 넘게 치솟았다. 두바이유는 같은 기간 배럴당 23.38달러에서 81.22달러로 3.5배 뛰었다.
한전의 전기 구입가격은 올랐지만 가계·기업 등 최종 소비자에 판매하는 소매가는 묶여 있는 상태다. 정부는 올해부터 연료비 상승·하락분을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는데, 전기료는 지난해와 같은 수준이다. 4분기 전기요금을 1kWh당 3원 올리긴 했지만 이마저도 1분기 3원 내렸던 것을 원상복귀했다.
결국 '콩(연료)'보다 싼 '두부(전기)' 판매로 인한 손실은 한전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한전은 3분기까지 누적 영업손실 1조1298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영업손실 규모는 3조8492억원, 발전 자회사 실적을 뺀 한전만의 적자 규모는 4조3845억원으로 예상된다.

◆英·日 전력업체 줄파산…하루 이자만 57억, 한전도 재무상황 악화=일각에선 연료비 상승에도 정부가 전기료를 또 올리지 않는다면 한전의 재무 상황이 더욱 악화돼 국민 혈세까지 투입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해외 전력기업에서는 파산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유럽 천연가스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치솟으면서 올 들어 영국 전력기업 약 50곳 중 절반이 넘는 27곳이 파산했다. 영국 정부가 전기요금에 '가격 상한제'를 도입하자 연료비 상승분을 반영하지 못한 기업들의 경영 환경이 급격히 악화된 영향이다. 일본도 11개 소규모 전력판매기업이 경영 악화로 파산했다. 전기요금을 1원도 올리지 못한 한국과 달리 영국, 일본의 전기료 소매가는 올해 각각 11.8%(2~9월), 14.6%(1~10월) 올랐음에도 파산 위기를 넘기지 못한 것이다. 스페인은 35.7%, 이탈리아는 14.4% 전기요금을 올렸다(1~10월).
정부의 전기요금 인상 억제가 누적될 경우 한전의 파탄난 재무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결국 혈세 투입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전은 올해 부채가 142조원, 이자비용은 2조원으로 추산한다. 이자비용만 하루 57억원에 달하는 셈이다. 이와 함께 전기료 동결이 한전의 주주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전기요금 현실화를 미루고 한전에만 부담을 떠넘긴다면 결국 차기 정부와 미래 세대에 대한 폭탄 돌리기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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