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이춘희 기자] 정부가 사실상 전·월세 재계약 과정에서 임대인의 임대료 인상 요구권마저 무력화하는 유권해석을 내놓아 파장이 예상된다. 사실상 조건 없는 세입자의 계약갱신요구권을 인정하는 셈이어서 사유재산권 침해 논란이 확대될 전망이다.
2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 해설서'를 28일부터 국토부, 법무부와 각급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배포할 예정이다. 해설서는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제 도입을 골자로 지난달 31일 공포·시행된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다양한 분쟁 사례에 대한 유권해석을 담고 있다.
세입자 거부하면 임대료 못 올린다고?논란은 그동안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에 대한 임대인의 유일한 방어권이었던 임대료 5% 인상마저 유명무실해졌다는 점이다. 해설서에는 법이 최대 5% 이내로 정한 전·월세 상한제에 대해 "임차인이 증액 청구에 반드시 응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꼭 5%를 증액해 줘야 하는 것도 아니다"라는 취지의 답변 내용이 담겼다.
국토부는 계약갱신 시 5%이내의 증액은 어디까지나 '협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해석이다. 또 이러한 증액 요구를 위해서는 "현재의 임대료가 임차주택에 대한 조세, 공과금, 그 밖의 부담 증감이나 경제 사정의 변동으로 인해 적절하지 아니하게 된 때" 등의 증액 청구 사유를 임대인이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 국토부의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임대인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려는 것인 만큼 이에 대한 사유를 입증해야할 책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임대료 인상을 위해서는 임대인의 현재 상황이 임대료를 올리지 않고는 버거운 상황임을 임차인에게 납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계약갱신 거부도 못해… 억울하면 소송하라?

더욱이 임차인이 임대료 증액을 거부할 경우 임대인으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다. 임대료 증액 거절을 이유로는 임대차 계약 갱신 거부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행법상 임대인의 계약갱신 거절 사유 중 임차인의 임대료 인상 거부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로 인한 재계약 거부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의 2기 이상 차임 연체 ▲임차인이 주택을 고의나 중과실로 파손 ▲임대인이 철거·재건축하기 위해 점유를 회복해야 할 때 ▲임대인이나 그 직계존·비속이 실거주하려는 경우 등만을 계약갱신 거절 사유로 정하고 있다. 해당 사유에 포함되지 않으면 세입자가 갱신을 요구할 때 무조건 계약을 2년 갱신해야 한다.
분쟁에 따른 해결책도 '당사자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임대인이 임대료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하거나 민사소송을 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분쟁조정위는 세입자가 조정절차를 거부하면 임대인의 신청이 각하된다. 결국 남는 방법은 민사소송 외에는 없는 셈이다.
집주인들 "듣도 보도 못한 법"이 같은 내용이 알려지자 집주인들은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40대 임대인 A씨는 "어느 세입자가 임대료 올린다는 데 동의하겠느냐"며 "아무리 이유를 제대로 만들어 가도 세입자가 싫다면 그만인 것 아니냐"고 말했다.

임대료 상한선을 5%로 묶고 여기에 전세를 월세로 전환할때 적용되는 전·월세 전환율도 4%에서 2.5%로 낮춘 것도 모자라 사실상 임대료를 4년간 한푼도 못 올리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세입자가 갑인 세상", "시장경제의 근간을 부정하는 일"이라는 내용의 성토 글이 잇따르고 있다.
일선 부동산중개업계에서도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분당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바뀐 임대차보호법에서는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어느 정도 자금여력이 있는 집주인들은 세입자를 내보낸 뒤 가격 인상분을 선반영해 세를 놓으려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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