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문제원 기자] 정부가 부동산 관련 규제를 크게 강화하자 세금 부담이 커진 법인은 아파트를 대거 처분한 반면, 다주택자들은 매도 대신 증여를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잇따른 규제로 시장의 혼란이 커지는 가운데 매도인과 매수인의 줄다리기가 이어지며 올 연말까지는 약보합세가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21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법인의 아파트 매도는 총 8278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올해 들어 가장 많은 거래량으로, 전월(6193건)과 비교하면 33.7% 증가한 것이다. 법인의 아파트 매도건수는 지난 1월 3370건, 2월 3251건, 3월 4317건, 4월 4219건, 5월 4935건, 6월 6193건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서울의 경우 법인이 개인에게 아파트를 매도한 건수는 지난 6월 110건에서 지난달 303건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법인 매물이 단기간에 늘어난 이유는 정부가 6·17대책을 통해 법인에 대한 세금 부담을 대폭 늘렸기 때문이다. 법인은 올해 가격 상승기에 청주, 서울 등 아파트를 대거 매입하며 규제 사각지대 속에서 집값을 올리는 주범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법인은 내년 6월부터는 종합부동산세율이 2주택 이하는 3%, 3주택 이상 또는 조정대상지역 내 2주택은 4%로 각각 인상된다. 기존에 적용되던 종부세 6억원 공제도 폐지되기 때문에 보유세 부담이 크게 늘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1월부터는 법인이 주택을 처분할 때 부과하는 양도소득세의 세율도 기본 10∼25%에서 추가로 10% 중과세된다.
법인 매물이 늘어나는 것은 정부의 정책이 통했다는 것을 뜻한다. 시중에 유통되는 매물이 증가하면 그만큼 가격 상승을 차단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주택자들은 규제에도 불구하고 매도보다는 증여를 선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집값은 장기적으로 오를 것으로 보이는 만큼 자녀에게 증여해 당장 세금 부담은 줄이고 추후 시세차익은 누리겠다는 취지다.
한국감정원 통계를 살펴보면 지난달 전국의 아파트 증여 건수는 1만4153건으로 전달(6133건)의 2.3배에 달했다. 전국 증여 건수가 1만건을 넘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은 3362건으로 한달만에 2배 이상 증가했다. 노원구가 407건으로 가장 많았고 송파구(405건), 양천구(336건), 강남구(282건), 용산구(229건) 등이 뒤를 이었다.
이 역시 정부가 최근 다주택자들에 대한 종부세율, 양도세율 등을 대폭 인상한 효과로 풀이된다. 타인에게 매각하는 대신 증여를 선택한 것은 추후 집값 상승여력이 더 남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자문센터장은 "집값이 더이상 올라가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확산하면 급매로 던지는 매물이 나오겠지만 아직까지는 더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30대의 서울 아파트 매입도 계속됐다. 이들은 지난달 서울에서 아파트를 5345건 매입해 서울 전체 거래량(1만6002건)의 33.4%를 차지했다.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높은 비율이다. 청약 가점이 낮아 분양으로는 주택마련이 쉽지 않은데, 전셋값이 치솟아 주거가 불안정해지자 최대한 대출을 받아 내집마련에 나선 것이다.
전문가들은 집값이 당분간 약보합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그동안 많이 올랐기 때문에 상승률이 둔화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다주택자들은 세금이 인상되더라도 집값이 더오른다고 많이들 생각하는 만큼 집값이 마이너스로 꺾이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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