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유인호 기자, 김유리 기자, 임온유 기자] 전세의 월세 전환을 막기 위해 추진하는 정부의 '월차임(전ㆍ월세) 전환율' 인하가 발표 직후부터 역풍을 맞고 있다. 벌써부터 시장에서는 집주인들이 전세가를 높이거나 보증금 중 월세 전환 금액을 늘리는 등 줄어드는 월세 수입을 보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분위기다. 전ㆍ월세 전환율 인하가 월세 전환을 막기는커녕 자칫 세입자의 월세 부담만 늘릴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20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날 정부가 부동산시장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현행 4.0%인 전ㆍ월세 전환율을 2.5%로 낮추기로 결정했지만 일선 시장에서는 전ㆍ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제 시행에 따른 '전세의 월세화'를 막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임대수입 줄어든다니 가격 올리겠다는 집주인분당신도시 서현동 A공인중개사사무소(이하 공인) 관계자는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경우는 기존 계약 연장이 아닌 신규 계약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라며 "집주인들은 전ㆍ월세 전환율 인하로 월세 수입이 줄어드니 이를 보전하려고 보증금 중 월세로 돌리는 금액 자체를 늘려 세를 놓겠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전ㆍ월세 전환율 자체가 기존 계약의 연장에만 적용되다 보니 전환율 인하 조치가 신규 임대차 계약으로 불똥이 튀고 있다는 것이다. 서대문구 남가좌동 B공인 대표 역시 "계약 연장은 어쩔 수 없지만 갱신 기간이 끝나고 신규 계약 때는 '전세 4년'을 감안해 전ㆍ월세를 더 올리겠다는 집주인이 많다"고 말했다.
오히려 이번 조치가 시중의 전세 매물 부족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줄어든 월세로 재계약하느니 차라리 자금을 조달해 세입자를 내보낸 후 일정 기간 거주 후 전ㆍ월세 가격을 높여 다시 매물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송파구 가락동 C공인 관계자는 "전세 만기 시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할 수 없도록 집주인이 들어와 살겠다는 경우가 상당수"라며 "지금도 임대 물건을 찾아보기 힘든데 전ㆍ월세난은 더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온라인에서도 '임대시장을 떠나겠다' '차라리 부모님을 모시겠다'라며 새 임대차법과 전ㆍ월세 전환율 인하에 대한 반발의 목소리가 높다.
◆집주인 우위 지속에 전환율 실효성 의문정부가 전ㆍ월세 전환율을 내렸지만 강제 사안이 아니라는 점도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키우고 있다. 시중에 전ㆍ월세 매물이 풍부하다면 문제가 없지만 매물 부족이 장기화될 요인이 많은 상황에서 집주인 우위의 시장이 계속된다면 전환율 조정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다.
이미 시장에서는 기존 4%인 전환율조차 유명무실화된지 오래다. 실제로 서울 강남권과 마포ㆍ용산 등 신축 아파트 반전세 매물 다수가 6% 이상의 전ㆍ월세 전환율로 월세를 납부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이 집계한 올해 7월 수도권 전ㆍ월세 전환율도 5.7%(KB국민은행 기준 4.81%)로 현재 기준인 4%를 훌쩍 뛰어넘는다.
매물 부족은 이미 서울 시내 곳곳에서 현실화하고 있다. 아실에 따르면 20일 기준 4424가구 규모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경우 전체 전ㆍ월세 매물이 57개에 불과한 데다 이 중 47개는 월세 매물로, 전세는 단 10개에 불과하다. 강북권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성동구 옥수동 래미안옥수리버젠는 전체 1551가구 중 전세 매물은 12건인 반면 월세는 23건이다.
적용할 대상과 시기를 놓고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전ㆍ월세 전환율 2.5%를 기존의 계약까지 소급 적용해 기존 월세를 인하하도록 강제하지 않는 이상 세입자들마다 형평성이 크게 훼손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정부의 임대차시장에서의 직접적인 가격 통제는 민간임대사업의 축소와 물량 감소를 부채질할 확률이 높다"며 "임대차 보호 기간이 종료되는 4년마다 월세 전환이 급격이 확대되거나 임대료가 급등하는 문제와 함께 임대인의 투자 수익률 저하 요소로 임대인들의 시장 이탈이 점차 가속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격 개입이 매물 퇴장 초래시장에서는 민간 임대차시장에 대한 정부의 접근법 자체가 시장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드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매매와 달리 임대차시장은 철저하게 실수요만으로 움직이는데 임대인을 과도하게 압박함으로써 매물이 시장에서 사라지는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임대인과 임차인 간 협의를 통해 가격이 결정되는 민간 임대시장에 정부가 직접 개입할 경우 시장 왜곡이 발생한다"며 "단기간에 급하게 가격을 잡고 보자는 조급함을 버리고 시장 기능 회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인호 기자 sinryu007@asiae.co.kr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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