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업데이트 20.08.18 11:09

[초동시각]반면교사 '베네수엘라' 부동산 정책

[아시아경제 유인호 기자] 집주인 A씨는 4년간 살아온 세입자를 대상으로 임대료를 올리지 못하게 되면서 그냥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새로 들어올 세입자 역시 원하는 수준의 임대료를 맞추기 힘든 데다 계약 후 인상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아예 빈집으로 둘 작정이다.
민간 건설업체들도 정부의 분양가 및 개발 통제로 임대주택 사업의 수익이 나지 않자 임대주택 사업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부동산시장에서 임대주택 품귀 현상이 일어나면서 수급불균형이 심화됐다. 전세 물량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된 것이다.
이는 한국의 이야기가 아니다. 남미 베네수엘라 부동산시장의 10여년 전 모습이다. 묘하게 한국의 현 상황과 닮아 있다. 정부가 반시장적인 부동산 정책을 도입하면서 이 같은 정책 도입으로 이미 실패를 맛본 베네수엘라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각종 부동산 관련 커뮤니티 등에선 대한민국과 베네수엘라를 합친 '대네수엘라'라는 신조어가 나오고 있다.
시장과 전문가들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베네수엘라의 2000년대 중반 이후 정책과 연계해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에서 최근 강화되는 부동산 규제 대부분이 10여년 전 베네수엘라에서 잇따라 도입해 실패한 것과 닮았다는 것이다.
한-베네수엘라 경제협력센터의 보고서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정부는 2003년부터 9년간 임대료를 동결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이후에도 임대감사국이 면적에 따른 임대료를 정해주는 식으로 운영한다.
최근 시행된 전ㆍ월세상한제나 도입 가능성이 높은 표준임대료제와 비슷하다고 평가받는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2011년엔 임차인이 새로운 주택을 구하기 전 퇴거를 강제하지 못하게 하는 임의적퇴거금지법을 도입했다. 최근 전세가격 폭등을 일으킨 주범으로 지목되는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유사하다는 분석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부동산 감독기구도 그렇다. 해외에서도 부동산 전담 감독기구는 유일하게 베네수엘라의 공정가격감독원에 비교된다. 이 기구는 모든 생필품 가격을 관리하는 곳으로 사회주의 경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정부가 직접 나서 임대료 등 부동산 관련 가격 통제를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정책은 대실패로 결론이 났다. 주택을 포함한 모든 물품의 가격을 감시ㆍ감독한 이 기구는 반시장적 규제의 반작용으로 '임대 암시장'을 형성시켜 오히려 집값 폭등을 불렀다.
한-베네수엘라 경제협력센터의 보고서는 2013년을 기준으로 "매달 부동산 가격이 16%씩 오르고 있다"며 "극빈층을 돕고자 정책을 실현했지만 주택을 매입할 여건이 되지 않는 빈곤층이 가장 큰 피해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최근 한국의 전ㆍ월세시장은 10여년 전 베네수엘라처럼 불안해지고 있다. 임대차3법 시행 초기 부작용으로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지난주까지 59주 연속 상승하며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한국 감정원에 따르면 6월 1주 0.04%에서 0.08%(6월3~4주), 0.10%(6월5주~7월1주), 0.13%(7월2주), 0.14%(7월4주), 0.17%(8월1주) 등으로 오르고 있다.
새 임대차법으로 전세 계약 기간이 4년으로 늘어나고 계약 갱신 시 보증금 인상이 5% 안으로 제한되자 집주인들이 신규 계약에서 전세가격을 올려받고 있고, 4년 거주가 보장된 세입자들이 기존 집에 주저앉으면서 공급이 줄어 전세 품귀가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식 부동산 감독기구에 대해서도 시장주의의 기반을 둔 우리 경제에는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시장적인 정책으로 실패를 경험한 베네수엘라는 반면교사의 대상이지, 정면교사의 모델이 아니다. 지금의 부동산 정책 기조를 이어간다면 정부는 대네수엘라 조롱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유인호 기자 sinryu00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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