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상윤 국무조정실 사회조정실장이 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 입법예고 사전 브리핑을 하는 모습./김현민 기자 kimhyun81@
[세종=아시아경제 문채석 기자] 대형 주유소·가스충전소를 비롯해 대규모 노래방·식당 등 전국 15만여개 업소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 에버랜드 같은 놀이공원에서도 재해가 발생하면 중대재해법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된다. 정부는 영세 자영업, 소상공인 등은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입장이지만 처벌 대상이 되는 대형 사업장 업주 위주로 반발이 예상된다.
정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을 내달 23일까지 입법 예고한다고 9일 밝혔다.
시행령 제정안에 따르면 식당, 철도, 도로 등 공중이용시설의 범위가 구체화됐다. 바닥면적 2000㎡ 이상의 주유소와 가스충전소, 놀이공원, 준공한 지 10년이 넘은 도로교량·철도교량 및 도로터널·철도터널 등이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에 추가됐다. 이와 함께 연면적 5000㎡ 이상 전통시장과 바닥면적 1000㎡ 이상인 휴게음식점·영화상영관·학원 등 23개 업종 영업장, 지하주차장도 법 적용을 받게 된다. 전국 주유소 1만2000개 중 연면적이 2000㎡인 곳은 약 650개(5%), 전국 다중이용업 영업장 17만7000여개 중 연면적이 1000㎡ 이상인 곳은 약 4300개(2.4%)다. 정부 관계자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전국 공중이용시설 가운데 15만개가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형 식당, 노래방 등 업종의 경우 '운영자가 곧 사업주'라는 점에서 반발이 클 전망이다.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중대재해법에는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를 안전보건확보 책임자로 명시하고 있다.
직업병 24개 명시…내년 1월 시행, 책임자 처벌

정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안에 법적용 대상 시설과 직업병 24개 등을 명시하면서 내년 1월부터 해당 사업장의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위반할 경우 처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하지만 정작 노동계와 경영계가 요구한 '질환의 심각성(중증도)'은 물론이고 대형 식당 등 업소의 안전인력과 예산에 대한 규정이 빠져 있어 법 시행 이후에도 적절히 인원과 예산을 투입했느냐는 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대재해법은 크게 산업계와 관련이 있는 중대산업재해와 공중이용시설에 적용되는 중대시민재해 등으로 구성된다. 중대산업재해와 관련해 경영계에선 리스크가 크게 해소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직업병 리스트뿐 아니라 중증도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1년 이내 직업상 질병자가 같은 요인으로 3명 이상 발생할 경우를 '직업성 질병'으로 규정했을 뿐, 중증도에 따른 형량은 시행령에 반영되지 않았다.
노동계는 중대재해법을 만든 계기가 된 택배기사 과로사 문제는 담기지 않았다고 본다. 뇌심혈관계와 근골격계 질환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전보건 인력 배치와 예산도 시행령안에 구체적으로 담기지 않았다는 점도 논란이다. 시행령 안에는 300인 이상 사업장에만 안전보건 전담인력 배치를 명시했을 뿐, 시민재해에 대해선 적정 인력 배치로 규정했다. 안전예산에 대해선 "사업장마다 상황이 달라 적정히 편성하라"고 규정했다. 결국 법 시행 후 안전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느냐는 문제를 제기했을 경우 논쟁은 끝없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또 노동계에서 주장한 2인 1조 작업, 신호수 배치, 과로사 방지를 위해 인력 확충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시행령에 명시돼 있지 않다. 정부 관계자는 "필요하다면 예산 등으로 조치하면 된다"며 사실상 업계에 떠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경영책임자 정확한 범위 없어…정부 "넣으면 지나치게 경직적"

처벌 대상인 '경영책임자'의 정확한 범위를 시행령에 정확하게 넣어달라던 경영계의 요구도 시행령에 반영되지 않았다. '경영책임자'는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돼 있다. 경영계는 '또는'의 앞 부분까지는 법인 대표(최고경영자·CEO)로, 뒷 부분은 안전보건책임자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고 주장한다. 즉 CEO가 안전보건 예산과 인력 등 경영 권한을 위임한 안전보건책임자가 CEO 대신 처벌을 받을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법에서 시행령에 위임한 사항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혀 왔고, 이 같은 논리에 따라 시행령에 해당 내용을 넣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법령에서 '또는 이에 준하여'라는 표현은 사실상 또는 앞부분에 적힌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과 같은 책임자라는 뜻"이라며 "법률에 정확하게 적용 직급과 직무를 적어놓으면 지나치게 경직적인 규제가 늘어나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래방 등 상공인들의 반발도 커질 전망이다. 시행령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포함된 공중이용시설은 15만개를 웃돈다. 식당, 영화관 등 사업장은 안전관리예산을 별도로 편성해야 하고 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가 처벌을 받아야 한다.
윤동열 건국대 교수는 "경영책임자의 개념과 범위가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아 중대재해처벌법상의 의무 주체가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여전히 어렵다고 볼 수 있는 점도 문제"라면서 "노사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법 실행 이전에 포괄적이고 세부적인 검토안 마련이 필요하고, 특히 법 제정 이후 업종별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다음 달 23일까지 시행령안 입법예고를 한 상태다. 다만 내년 1월 법시행 전에도 노사 측과 의견을 교환하기로 했다.
세종=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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