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0.11.29 03:10최종 업데이트 20.11.29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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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이 진료기록을 수정·허위기재한다? 민형배 의원 개정안은 의료진과 환자 이간질하려는 것인가

[칼럼] 이필수 전라남도의사회장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지난 8월 의료계는 공공의대 신설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집단휴진 투쟁에 돌입했다. 이후 협상의 결과물로 동반자와 같은 좋은 관계를 형성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의료계에 대한 정부·여당의 맹공이 이어지고 있다. 찬바람이 스산히 느껴지는 것은 겨울로 향해가는 계절만이 아니라 분노에 찬 정부·여당의 반격 때문이라는 것이 분명해보인다. 

국회 정무위원회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은 지난 24일 환자가 진료기록 열람을 요청할 때 의료인이 이에 즉시 응하도록 하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현행법은 환자가 본인의 진료기록 열람을 요청할 경우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특별한 사유 없는 열람 지연과 함께 환자에게 사유를 알리지 않는 열람 거부도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 개정안의 취지다. 특히 민 의원은 의료분쟁이나 소송에 증거로 사용될 진료기록 등을 의료인이 수정, 허위기재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현재도 환자가 본인의 진료기록 열람을 요청하면 진단서 등으로 이를 충분히 발급하고 있다. 또한 허위로 의무기록을 조작하는 것은 의료법 문제를 떠나 형사적 문제로 범죄에 해당한다. 정말 그런 예가 있다면 형사고소하고 응당한 처벌을 받도록 하면 된다. 단지 세간의 떠도는 말을 빌어 제안이유에 적었다면 이는 위계에 해당하며, 개정안의 권위를 땅바닥에 떨어뜨리는 것일 뿐이다. 

개정안에서 진단서와 처방전 등의 보존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명시하고 표준 의학용어를 사용하도록 한 것도 문제다. 

개정안은 진료기록의 보존기간이 지나치게 짧아 보존기간 후 증세가 재발하면 종래의 기록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는 의료현장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다. 재발된 증세를 위해 필요한 과거의 기록은 주로 진료기록부의 내용으로, 이는 병원이 존재하는 한 병원이 보존하게 된다. 

대학병원은 이미 50년전 수기작성된 기록도 이미지화해 저장하고 있으며, 신생 의료기관 역시 환자의 기록이 병원의 자산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 의무기록을 없애는 경우는 없다. 단지 의료기관이 폐업하는 경우 가지고 있는 의무기록을 어떤 식으로 보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될 수 있으나, 이는 보건소 등의 공적기관과 연계해 해결해야 할 문제다. 

진단서 등을 5년간 보관하도록 한 현재 규정도 실제적으로는 불필요하게 긴 시간이다. 실비보험을 포함한 보험관련 서류들이 대체로 2년 이내에 신청하도록 돼있는 만큼 5년 이상 진단서를 가지고 있어야할 필요는 극히 드물다고 할 수 있다. 또 직인이 날인된 종이서류를 보관하는 것은 공간과 인력의 낭비를 부추기며, 이것이 의료의 질을 담보한다고 할 수는 없다.  

표준 의학용어 사용의 의무화는 의학이라는 학문과 의료라는 현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의학용어는 라틴어에서 기원해 독일어권과 영어권으로 옮겨 파생·전환됐기 때문에 표준 의학 용어의 개념 자체를 정의하기가 어렵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국제질병분류와 종양학국제질병분류 체계가 도입돼 국제적으로 권고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통계와 표준화를 위해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를 제정해 1952년부터 이미 이를 사용해왔다. 우리나라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한 국제질병분류(ICD-10)와 종양학국제질병분류(ICD-O-3)의 최신 내용을 반영해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8) 개정·고시하고 2021년 1월 1일부터 새로이 적용될 예정이다. 따라서 표준 의학용어 사용을 의무화한다는 발상은 의료인 입장에서 황당무계할 따름이다.

개정안은 진료기록 관리를 개선하고 보건의료의 질을 제고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형식에 치우쳐 내용을 갉아먹는 것은 어리석다. 진료기록 관리를 개선하는 것과 보건의료의 질을 제고하는 것은 상관성이 낮다. 보건 의료의 질을 높이려 한다면 무엇보다 보건의료의 질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고 보건의료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 환자의 만족도인지, 의료기술인지, 서비스 점수인지, 학문적 업적인지, 이런 여러 가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필자는 당연히 결과에 대한 환자의 만족도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의 정책과 민형배 의원의 개정안이 만족도를 높이는 것인지, 아니면 의료진과 환자를 이간질하는 것인지 신중히 돌아봐야 할 것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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