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9.03.26 06:36최종 업데이트 19.03.26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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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가 전공의에게 대가리박기 시키고 스키 못타도 타러 가자고 강제하고"

전공의 교육에서 보는 해방노예의사(Libertus Medicus), 여전히 비뚤어진 의국문화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몇 년 전 의대 교수들과 학교 앞 호프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누군가 수술복을 입은 채 바닥에 머리를 박고 양손은 뒤로 맞잡고 있는 속칭 '원산폭격'이라는 과거의 대표적 군대식 얼차려 행태인 ‘대가리박기’를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놀랍게도 필자와 같은 소속과의 전공의였다. 선진국들의 전문의 교육에서는 절대로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한 전공의가 필자를 찾아와 걱정거리를 이야기한 경험도 있다. 의국에서 교수가 스키를 타러가자고 해서 의국 야유회를 갈 예정인데, 자신이 치프(Chief Resident)인 입장에서 스키를 못 탄다며 불안해했다. 그래서 사실 그대로 교수에게 이야기한 다음 스키를 타지 말든가 아니면 못 탄다고 털어놓든가라는 처방을 내려줬으나, 결국 억지로 스키를 타다가 어깨가 부러져서 돌아왔다. 

21세기의 문턱을 넘어선지는 이미 강산이 두 번 바뀔 수 있는 20년 가까이 흐르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의 고질적 병폐는 아직도 멈추지 않고 진화 중인 듯하다. 

환자와 가족들에 의한, 특히 처지가 비슷한 동료 의사로부터 발생하는 다양한 형태의 협박과 폭력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의국 회식에서 과도한 음주로 야기되는 교수에 의한 전공의 폭력 문제는 아직도 전국 수련교육 현장에서 근절되지 않고 있다.

삐뚤어진 전공의 교육, 일본식 의국 문화에서 발단

환자에 의한 의사 폭력 뿐 아니라 의사 간 ‘내부 폭력’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 것인다. 이것은 아마도 왜곡된 유교정치 이념으로 몰락한 왕조문화, 일제의 식민주의, 그리고 군사문화의 삼박자가 의학교육에도 예외 없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 일본이 경성제국대학을 세웠을 때 조선인은 단 한사람도 정상적으로 교수에 임용되지 못했다. 의학과 법학 분야 모두 제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광복을 맞이한 시점까지 조선인 교수를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미 규범으로 정착된 차별과 구별의 정책이 조선인을 2등 국민으로 강등시킨 것이다. 이런 전통은 유교의 엘리트주의와 결합하여 해방 후에도 여전히 출신대학별 구별과 차별이라는 전통을 낳았고, 수능점수로 등급이 결정된 속칭 유명대학일수록 동일대학 출신을 강하게 선호하는 현상을 짙게 했다.

우리나라 전공의 교육의 모체는 분명 일본의 의국(醫局) 제도에 뿌리를 두고 있음에 틀림없어 보인다. 해방 후에는 미국식 전공의 제도를 채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집단주의와 수직적 위계질서, 그리고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을 특징으로 하는 문화가 전공의 교육의 말단 단위인 의국문화를 지배했다. 

반대로 최신 교육학의 기법과 의사직에 대한 노동자적인 신분을 존중하는 북유럽이나 영미와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우리나라 전공의 신분은 상대적으로 취약성(vulnerability)이 더욱 더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문화적 특성과 암울한 의료 환경이 병합돼 시너지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다시 말해 가장 합리적이고 개방적이면서 민주적이어야 할 최고 수준의 교육기관이어야 할 전공의에 대한 정상적 모습이 ‘폭력적 괴물’로 변형된 것을 알 수 있다. 

폭력이라는 것은 반드시 신체적이고 물리적인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차별과 구별은 대표적인 구조적 폭력이다. 우리 문화는 가족 중심적 사고방식에 기반해 집단 내 위계질서에 따라 개인의 정신적 사고를 규정하는 근간이 된다. 의국이라는 가족적 집단 내에서는 전공의가 잘못하면 마치 자식을 꾸짖듯 야단칠 수도 있고 군대에서 하급자를 다루듯 가혹한 신체적 린치도 가한다. 

우리의 의학기술이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는 현실에 의국제도의 기여도가 높아 보이는 일종의 '비정상적 신기루' 현상도 나타난다. 전공의 문화가 보여주는 의국제도의 수직적 인간관계는 전공의가 자신이 주체적 의식을 가진 자유인인 것을 잊어버리게 한다. 로마시대의 해방노예(Libertus)와 같은 특성이 바로 우리 전공의에게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것은 같은 직종 내 종사자간 학대로 해석이 가능하다. 

의국이 권투도장, 바둑도장이 되지 않으려면 교수 스스로 문제인식부터 

전공의가 교수들의 선의와 호의의 제안에 대해 전공의가 ‘아니오’라고 답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전공의 개인 성격 탓으로 돌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국문화에서 교수의 제안에 반대의견을 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하물며 의견개진 자체도 쉽지 않은 것이 실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겉모습은 멀쩡해 보이는 의국문화에는  가족적이면서도 폭력적인 상반된 끔찍한 양면성이 내재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족 간에는 공식적인 평가를 하지 않는다. 의국도 마찬가지다. 전공의가 갖추어야 할 역량의 평가가 본래의 역량보다는 다른 인간관계적 특성(attributes)에 의한 편견과 평가가 기본이 된다. 의국이 권투도장, 바둑도장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의 의국문화 개선을 위해 줄기찬 논의를 해야 한다. 

스파르타쿠스는 해방에 성공했으나 결국 문화자산과 사회자산이 없어 로마에게 멸망되고 말았다. 전공의는 수련과정에서 지식과 기술을 배우고 익혀 역량을 갖추고 있지만, 사회성과 올바른 인간관계 형성에 도움이 되는 사회 문화적 자산이 충분히 배양되어 있는지 의문스럽기만 하다. 

일찍이 프랑스 철학자 레비나스는 공적 영역에서 가족적 관계의 사악함을 지적했다. 이런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정의와 윤리의 개입으로 가족적 관계를 사회적 관계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의 의국문화에 필요한 것이 바로 탈(脫)가족적 사회기구로의 전환이다. 그래서 전공의 교육의 질적 향상은 제3자에 의한 사회적 평가기구의 관여가 필요하다. 한편으론 우선 교수부터 전공의와 학생이었던 과거의 입장을 떠올려보고 다시는 해방노예 문화의 대물림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교수는 전공의나 학생이 편한 마음으로 공식적으로 그리고 자유인으로서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현실 세계에서 많은 교수들이 자신은 전공의들에게 인격적으로 충분히 잘 대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은 상당 부분 사르트르가 말하는 Facticity(자신은 아니라고 부인하나 이미 몰입되어 있는 것, in-itself which you are in the mode of not being it)의 현상에 불과할지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Facticity 현상’의 꿈속에서 깨어나 현실 속으로 걸어 나와야 전공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첫 단계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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