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6.06.21 06:27최종 업데이트 16.06.24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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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리면 히포크라테스, 찌르면 돌팔이

인턴이 환자차트를 쥔 채 잠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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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가 항구토약 대신 치명적인 근이완제를 잘못 투약하는 바람에 젊은 군인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예전에는 정맥으로 주사하는 항암제를 척수로 주사하는 바람에 환자가 사망한 적도 있다. 병원에서는 오·투약을 막기 위한 여러가지 안전수칙이 이중 삼중으로 적용되고 있으나, 왜인지 사고는 잊을 만하면 생기고 있다.

시기를 늦출 수 있을 뿐, 사람이 하는 일은 언젠가는 오류가 반드시 생긴다.


한편 인턴의사들이 환자의 혈액이 묻은 주사바늘에 찔리는 사고는 그보다 훨씬 자주 생겨서 뉴스거리도 안 되는데, 나 역시도 경험한 적이 있다.

너무 잦아서 과소평가되지만 이것 역시 생명과 직결되는 심각한 의료사고의 하나다.

에이즈 환자의 주사바늘에 찔린 인턴이 이성친구와 나란히 에이즈 양성반응을 보였다는 소문도 있으며, C형 간염 환자의 주사바늘에 찔린 인턴이 전격성 간염에 빠져 목숨을 잃은 기사도 있다. 이런 사건들은 근이완제 오투약과 정확히 같은 성질의 사고다. 다만 실수의 대상이 직원 자신이냐 환자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안전 불감증에서 핵심을 찾는다면 틀렸다.

병원만큼은 예방 수칙을 매년 철저하게 반복 교육하고 있고 그래서 모든 의료인은 아주 주의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수의 인턴들은 그런 사고를 치지는 않지만, 여전히 그런 사고는 매년 적지 않은 수로 일어났고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새벽부터 밤까지 꼬박 쉬지 못한 인턴이 응급수술을 마치고 새벽 3시에 수십명의 채혈을 하는 동안, 그것이 1년내내 반복되는 동안의 한 순간 실수는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것이다.


인턴의사가 피로에 지쳐 바늘을 대충 쓸어담다가 바늘에 찔려 에이즈에 감염된다 해도 어차피 스스로 초래한 일에 자신이 피해를 입은 꼴이라 언론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것은 프레스 기계를 다루다 손가락이 잘린 노동자의 이야기가 뉴스에 거의 나오지 않는 것과 비슷한 구조다.

하지만 만에 하나 기사화가 된다면 열악한 노동환경에 희생된 피해자라는 타이틀은 딸 수 있다. 그 바늘이 다른 환자를 찌르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얼마 전 지하철 스크린도어 작업을 하다가 진입하는 열차에 치어 목숨을 잃은 한 청년은 아주 안타까운 희생자가 되어 추모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안전조차 챙길 여유와 인력을 보장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청년이 자신이 치어죽은 것과 완전히 같은 이유로, 작업중에 스크린도어 폐쇄를 미처 확인할 여유를 갖지 못하여 어린이가 그곳으로 들어가 죽게 되었다면 업무상 과실치사의 가해자로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한 연구결과에서 6시간밖에 안 잔 사람은 밤을 샌 것 만큼이나 인지능력이 저하된다고 한다.


그런데 대학병원에서는 이틀에 한번꼴로 밤을 샌 의사들이 그 다음날 정상근무를 한다.

지금은 명목상으로 금지되긴 했지만 2일 연속 당직, 3일 연속 당직, 아니 100일 연속 당직도 흔했다.

그들에게는 인지능력이 저하된다는 6시간 수면조차 사치인 경우가 많다. 물론 상당히 엄선된 인재인 의사들은 대부분 그런 조건 하에서도 대부분은 실수하지 않고 무사히 수련을 끝마친다.

다만 고작 하룻밤을 새고도 집중력이 저하된 일부 의료진들에 의해 일부 환자가 죽을 뿐이다. 선진국에 비해 몇 배의 환자를 떠맡은 한국 간호사들 역시 대부분은 의료사고를 치지 않는다. 다만 고작 그 정도의 업무 부하에 넋이 나간 무능한 간호사들이 간혹 사고를 치고 우리는 비난하며 그녀의 면허를 회수할 뿐이다. 어차피 할 사람들은 줄 섰다.


물론 어떤 환경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주의 의무는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고난도 수술중의 실수도 아니고, 손가락 골절로 입원했다가 투약 실수로 죽은 환자는 얼마나 허망하고 원통하겠는가?

사실 의료 사고든 말기암이든 안타깝지 않은 죽음은 없고 생명은 너무나 무겁다.

그래서 과로가 개인 과실의 변명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통계와 경향성에서 다른 사회와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사회적 책임이다. 과실치사를 저지른 사람을 그렇게 실수하기 쉬운 환경으로 몰아넣은 나머지 사람들은 정말 책임이 없는가. 그리고 이 사람만 솎아내면 앞으로는 문제가 사라질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모든 안전규정은 똑똑한 사람들이 복기하는 매뉴얼이 아니다. 가장 멍청한 사람이 가장 최악의 상황에 있다고 할지라도 무난하게 따를 수 있도록 가정하고 짜여지는 것이다.

안전기준 하에서도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한두번쯤은 일어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반복되면 개인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만취보다 위험하다는 밤샘 상태의 의사에게 안전 교육을 했다는 기록만 있다고 시스템의 책임이 없어지지 않는다. 당연히 돈과 인력이 변수다. 


한 히포크라테스가 환자 차트를 손에 쥔 채로 잠들어버렸다

비싸고 안 좋은 것은 있어도 싸면서도 좋은 것은 없다.

미국 의료비의 100분의 1인 한국 의료비를 수납할 때에는 유리하니 입 다물고 있지만, 의료사고 배상액만큼은 미국의 기준을 잊지 않고 있다가 들먹이는 여론을 보면 몰라서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미국 의료비의 100분의 1 수가로 돌아가는 병원에서, 담당한 환자의 수는 10배인 의료진은 가해자가 될 확률이 그만큼 증가할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가 100배의 돈 10배의 인력을 쓸 수 있는 선진국은 아니다.

그래서 한국인은 필연적으로 목숨의 가치도 선진국보다 낮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고작 펜대 돌리며 처방전 하나 프린트하는데 돈 받느냐고 투정하는 사람들은 그 진단이 잘못되면 수억원의 배상금을 요구하는 이중잣대를 휘두른다.

의사 월급은 300이면 되지 않느냐는 사람도, 심장에 기형이 있을 뿐인 멀쩡한 아기를 수술하다가 죽으면 의사 본인조차 평생 못 만지는 수십억원의 배상금을 내야 한댄다.

심지어 산부인과에서는 과실이 없어도 돈 많이 버니까 위로금을 주라는 법도 생겼다.

단순해 보이는 업무에 얼마나 많은 판단과 무거운 책임이 녹아 있는지 모르는가.

간호사 역시 업무강도는 차치하고서라도, 제법 할법한 실수로도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업무가 다른 직업과 단순히 연봉과 비교될 일인가 말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 그들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맡고 있었는지 같은 직장의 타 직군으로서 되새겨보는 계기도 됐다.

한 히포크라테스가 환자 차트를 손에 쥔 채로 잠들어버렸다.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다 내놓은 이 숭고한 모습을 칭찬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가 메스를 쥔 채로 잠들어버린, 그래서 자신의 잠을 위해 환자의 생명을 빼앗아버린 돌팔이일지 알아보기 위해선 평생을 감시해야 하니까.
 

이번 칼럼은 페이스북에서 'John Lee'라는 필명을 사용하시는 의사 선생님의 글입니다.

#히포크라테스 #인턴 #메디게이트뉴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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