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6.06.10 07:32최종 업데이트 26.06.10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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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 진정한 의미의 환자 안전(patient safety)과 선진국의 'Just Culture'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환자 안전’은 의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예방 가능한 위해(preventable harm)를 감소시키는 활동을 의미한다. 전체 입원환자의 약 10% 포인트 범위에서 예방 가능한 위해를 겪고 있으며, 이 중 상당수는 시스템 개선을 통해 감소시킬 수 있다고 한다. 현대적 의료가 갖는 위해의 특성에 맞춰 선진국은 환자 안전을 단순한 의료인의 주의 의무 문제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의료제도와 의료문화, 그리고 데이터 시스템이 결합한 보건의료의 주요한 거버넌스 문제로 인식하여 접근하고 있다.

특히 덴마크와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처벌 중심(blame culture)’이 아닌 ‘학습 중심(learning system)’의 Just Culture로 환자 안전 체계를 새롭게 구축하여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은 강력한 측정 및 평가 체계를 구축했으나 높은 의료소송 부담이라는 극복하기 힘든 한계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환자안전법 시행 이후 어느 정도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으나, 세계 최고의 의료 형사처벌 국가의 문제로 솔직한 사건, 사고 보고 문화와 임상 자료 축적 면에서는 개선이 필요하다. 

덴마크는 국제적으로 가장 대표적인 환자 안전 분야 선진국 중 하나로 평가된다. 지난 2004년에 환자안전법 도입 이후 모든 의료기관에 위해사건(adverse event)의 보고를 위해 국가 차원의 통합 환자 안전 시스템(Danish Patient Safety Database, DPSD)을 구축했다. 그리고 예방 가능한 사고를 범죄의 대상이 아닌 비의도적 사건으로 덴마크어로 ‘Utilsigtede hændelser(UTH)’로 공식 명명하고 명문화했다. 지난 2020년부터 2024년까지 보고된 UTH는 약 30만 건에서 약 49만 건으로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UTH는 시·군 지자체, 병원, 기타 광역지자체 시설, 민간병원과 호스피스 등 네 가지 그룹에서 보고된다. 보고 시에는 해당 사건의 실제 결과와 잠재적 결과를 모두 기재해야 한다. 개별 보고된 13만 건에 대해 위해 정도의 심각성을 유형별로 확인해 보면, 이 중 약 8만 건(63.5%)에서 환자가 다치지도 않았고, 아무런 증상이 없는 사건이다. 중증의 심각한 위해는 5,356건, 그리고 치명적 위해나 사망은 654건으로 차지했다. 

덴마크·스웨덴 북유럽형 환자 안전 모델 처벌 아닌 학습을 통한 재발 방지가 주목적

덴마크의 인구는 약 600만 명 안팎으로 추산되는데, 위해 보고 사건의 건수를 보면 덴마크가 구축한 의료의 투명성에 대해 놀랍기만 하다. 이런 진솔한 위해에 대한 보고가 가능한 이유 중의 하나는 덴마크가 채택하고 있는 ‘과실 불문 보상(no-fault compensation)’ 제도로서 환자는 의료인의 과실 여부를 입증하지 않더라도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국가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의료진 역시 사고 보고에 따른 민, 형사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 이런 제도는 사고의 은폐보다 자발적 보고와 학습을 활성화할 수 있다.

덴마크는 국가 단위 임상 레지스트리(registry)를 기반으로 입원·수술·처방·사망자료를 연계해 관리한다. 이를 통해 병원별 이상징후를 조기에 발견하고 환자 안전 문제를 신속하게 개선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덴마크는 의료사고 보고 체계의 활성화를 통해 중증 투약 오류 감소, 병원감염 감소, 상대적으로 낮은 의료소송 비용 등의 성과를 얻고 있다고 한다.

덴마크의 이웃인 스웨덴 역시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의 환자 안전 체계를 구축한 국가다. 국가 통합 정보시스템을 통해 수술 후 합병증, 재입원, 재수술, 장기 생존율 등을 체계적으로 추적해 관리한다. 이러한 데이터는 병원별 성과 비교(benchmarking) 및 질 향상 정책에 직접 적용해 활용한다. 또한 스웨덴은 의료분쟁을 행정적으로 해결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방어 진료(defensive medicine)와 과도한 소송 부담을 완화한다. 스웨덴 모델의 핵심은 투명한 정보 공개, 국가 단위 정보관리, 학습 중심 환자 안전 문화, 그리고 의료사고 행정 보상 체계를 들 수 있다. 
 
환자 안전 선진국의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개인 비난’보다 ‘시스템 개선’이 우선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의료사고를 개인의 실수로 간주해 처벌에 초점을 두고 있으나, 현대의 환자 안전 이론에서는 대부분의 사고는 시스템적 요인에서 발생한다고 본다.

따라서 선진국들은 사고를 은폐하기보다 공개하고 학습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하고 있다. WHO는 이를 ‘Just Culture’라고 정의하며, 환자 안전의 핵심 요소로 제시한다. 선진국들은 환자 안전 성과를 병원평가 및 지불 체계와 연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CMS의 감염 및 재입원 패널티를 비롯해 영국 NHS의 quality payment, 네덜란드 보험계약 기반 질 평가 등은 환자 안전 개선을 병원의 재정적 동기와 연결하는 대표 사례이다.

사건·사고에 대한 진솔한 보고와 투명한 사회 공동 대응 시스템 Just Culture의 본질

한국은 전국 단일보험체계와 세계 최고 수준의 청구자료를 보유하고 있다는 강점이 있다. 그리고 환자안전법 시행 이후 제도적 기반도 상당 부분 마련돼 있다. 그러나 사건 사고 보고에 대한 법적 사회적 부담은 여전히 크다. 의료사고 형사 범죄화와 언론 노출 우려는 자발적 보고를 크게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임상 통합정보시스템(registry) 기반의 질 관리 체계는 북유럽 국가들에 비해 매우 제한적이다. 현재의 청구자료 중심 체계만으로는 실제 임상적 안전 성과를 충분히 측정하기 어렵다. 환자 안전과 지불 보상 간 연계도 상대적으로 미흡한 것도 사실이다.

환자 안전의 제도적 정착의 성공은 현재의 형사처벌과 면허 박탈의 공포에서 벗어나 학습 중심의 안전 문화를 조성하고 모든 의료사건과 사고에 대한 ‘진솔한 보고’가 가능하도록 문을 열어둬야 한다. 특히, 환자 안전에 대한 국제적 경험은 국가 차원의 시스템 설계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자칭 세계 최고의 의료라는데 아직도 ‘처벌 중심’에서 학습 중심인 Just Culture로 정책 전환을 하지 못하는 후진성을 보인다. 임상 registry 구축과 데이터 연계 강화, 환자 안전 기반 보상 체계 도입 등은 분명 우리나라 의료의 취약점이다. 사건, 사고에 대한 진솔한 공개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임상 환경의 안전성부터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인 것이다. 
<참고 자료> 
https://stps.dk/sundhedsfaglig/viola-viden-og-laering/utilsigtede-haendelser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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