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9.02.14 05:01최종 업데이트 19.02.14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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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진찰 행위의 중요성과 환자의 격(格)

진찰제도 개선으로 양질의 친절하고 안전한 진료를 제공할 수 있기를

[칼럼] 이정찬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전문연구원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진찰은 의사가 환자의 주소(chief complaint)와 관련된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문진, 시진, 촉진, 청진과 활력 징후 등의 행위를 수행하고 이를 토대로 문제 해결을 위한 검사나 치료계획을 수립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정의할 수 있다. 진찰 결과에 따라 환자에게 추가로 필요한 의료서비스의 종류와 양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의료체계에서 정확한 진찰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그러나 지금까지 의료정책에서 진찰 관련 논의는 늘 뒷전으로 밀려났었다. 우리나라에 상대가치제도가 도입된 지도 근 20년이 됐고 이미 두 차례의 전면 개정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진찰료에는 상대가치 개념이 제대로 정립돼있지 않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일차의료를 책임지는 동네의원에 있어 진찰이 갖는 중요도는 특히 크다. 통상 의원의 급여 진료비 수입 중에 진찰료는 약 60%를 차지한다. 바꿔 말하면 진찰료가 의원의 주 수입원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요양급여비용에서 진찰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감소하고 있다. 의원에서 외래환자를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일차의료강화 기전이 작동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상급종합병원에 그 기능과 역할을 점차 빼앗기고 있는 것이 의료전달체계상 벌어지고 있는 심각한 의료현실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비통계지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외래(내원일수와 진료비용 모두)에서 의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감소하고 있는 반면 상급종합병원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찰수가는 어떠한가. 우리나라 외래 진찰 수가는 외국에 비해 낮고 진찰료 원가보전율 역시 턱없이 낮다는 연구들이 이미 수차례 보고된 바 있다. 또한 진찰 중 발생한 의료행위들을 별도 보상하지 않고 모두 진찰료에 포함하는 급여기준의 문제도 있다. 이처럼 진찰에 대한 보상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고 점유율도 상급종합병원에 내주다 보니 동네의원 의사들은 어쩔 수 없이 기본에 집중하기보다 각종 검사나 비급여서비스 등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연간 외래진료건수는 16.0건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7.0건의 2배가 넘을 정도로 이용건수가 많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터 ‘3분 진료’ 내지 ‘박리다매식 의료’라는 오명이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자주 언급되기 시작했다.

최근 BMJ 온라인판(Irving et al., 2017)에서는 세계 67개국의 진찰시간을 비교했는데 방글라데시가 48초로 가장 짧았고, 스웨덴이 22.5분으로 가장 길었다. 평균 진찰시간이 5분미만으로 짧은 국가들은 대부분 후진국인 반면, 진찰시간이 15분 이상으로 비교적 긴 국가들은 대부분 선진국들이었다. 통상 3분 진료로 풍자되는 우리의 현실을 빗대었을 때 우리나라 의료체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선진국처럼 진찰시간을 늘리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선진국에서 충분한 진찰시간이 보장되는 진찰문화가 조성되기까지에는 그에 상응하는 적정수가가 보장되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을 돌아보자는 것이다.

진찰시간이 길면 의료소송 감소, 입원률 감소, 의무기록 관리 향상, 환자의 자가 관리 향상, 의사만족도 증가 등과 같은 긍정적 효과를 야기한다는 연구들이 많다. 반면 진찰시간이 짧으면 환자의 건강문제 야기, 의사의 스트레스와 번 아웃(burnout) 증가, 다 약제복용(polypharmacy) 증가, 항생제 남용, 의사-환자 소통 악화 등 다양하고도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한다고 한다.

즉 진찰제도의 개선만으로도 전체적인 의료시스템의 향상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데도 과연 언제까지 3분 진료, 박리다매의 후진 진찰문화를 그대로 방치할 것인가. 적정 진찰 수가가 보장된다면 응당 진찰시간은 점차 늘어날 것이고 질 향상과 함께 의사와 환자가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진료문화가 조성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여유 있는 진료시간 확보로 인해 환자의 격(格)은 자연스레 상승하게 될 것이다.

향후 3차 상대가치 전면개정에서 진찰료 개선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다고 한다. 의사와 국민이 모두 원하는 방향으로 양질의, 친절하고, 안전한 진료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합리적인 개편안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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